[논설] ‘이승만 특집’ 연기 아닌 철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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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광복절 특집 다큐멘터리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제1공화국> 5부작 방송이 사실상 연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프로그램이 KBS 1TV의 8월 편성안에서  빠져있는데다 “방송시기와 편수를 비롯해 제작 전반에 걸쳐 재검토 중”이란 관계자들의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그동안 ‘이승만 특집방송’을 강행하겠다고 누차 강조했던 KBS가 이렇게 한 발 물러선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먼저 지난 6월 말 친일파 백선엽을 전쟁영웅으로 미화한 <전쟁과 군인>으로 역사단체는 물론 KBS 내부에서 조차 엄청난 반발이 터져 나온데 이어 ‘이승만 특집방송’까지 했을 경우 부담을 견디기 어려웠을 법하다.

특히 8월 임시국회에서 수신료 인상을 잔뜩 기대하고 있는 KBS로선 굳이 야당과 시민사회를 자극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KBS가 민주당 대표실 도청 의혹의 당사자로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승만 특집방송’을 고집하다 수신료 인상 노력이 물거품에 그치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를 범할 것까지는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이유보다 KBS 스스로 공정성에 대해 자신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는 게 정확하다. 만일 KBS가 해당 방송의 공정성이나 신뢰도 면에서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면 주제와 내용 등을 놓고 반대 여론을 설득하는 노력을 진지하게 기울였을텐데 여태 그런 노력은 하나 없이 ‘문제없다’는 식의 변명만 늘어놓았기에 드는 생각이다.

하지만 KBS의 공정성 약속은 지난 ‘백선엽 다큐’에서 이미 허언으로 드러난 바 있다. 이번에도 KBS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공과(功過)에 대해 균형 있게 다루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방송의 부제만 보더라도 ‘개화청년 이승만’, ‘독립운동에 뛰어들다’, ‘대한민국을 건국하다’ 등으로 돼 있어 한쪽으로 편향됐음을 금세 알 수 있다.

가뜩이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대한 뉴라이트 단체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져 국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뉴라이트 세력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고, 이승만을 ‘국부’로 기념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광화문에 이승만 동상을 세우자고도 한다. 국민들에게 오른쪽 깜빡이만 켜자고 강요하는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방송을 통해 시민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전파할 책임이 있는 공영방송이 친일인사를 전쟁영웅으로 둔갑시키고, 분단의 책임자를 건국의 아버지인 양 떠드는 건 결코 올바른 모습이 아니다. ‘이승만 특집방송’은 연기가 아니라 철회하는 것이 옳다. 그것이 KBS가 ‘수신료의 가치’를 실현하는 기본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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