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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와 거리두기
  • 승인 2001.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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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빌딩으로 돌진하여 부딪히는 비행기, 타오르는 화염, 400m 상공에서 허공으로 뛰어내리는 사람, 무너져내리는 빌딩…. 우리는 그 충격적인 모습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보았고 앞으로 계속 보게될 것이다. 가상인지 현실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광경. 그것의 선정성은 사람들의 사고 능력을 정지시킬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contsmark1|따라서 사건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미디어는 한층 더 사람들에게 화면에서 눈을 떼고 ‘왜?’라고 묻게 하고 그 답을 주도록 노력해야 마땅하다. 테러의 충격 효과가 격심한만큼 테러의 원인을 탐색, 분석하고 전망하는 ‘거리두기’ 작업이 더욱 요구되는 것이다.
|contsmark2|이 역할과 관련하여, 한국의 텔레비전과 라디오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신문 특히 <조선>과 <동아>는 엉뚱하게 빗나간 모습을 보여주었다.
|contsmark3|가령 <동아일보>의 홍호표 이슈부장은 뉴욕의 쌍둥이 빌딩에서 엉뚱하게 광화문의 ‘트윈타워’를 이끌어낸다. 서울에서 “‘비판언론’이란 상징에 대한 공격”이, “적나라하게 노출돼 있는 주류와 메이저에 대한 공격이 집중되고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contsmark4|그의 주장이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 세기적인 테러 사건을 규명하기에도 바쁜 상황에 그 사건을 자사 방어용으로 동원한 신문은 아마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아니, 하나의 신문이 또 있다.
|contsmark5|<조선일보>는 부시 미대통령이 선언한 ‘악에 맞선 선의 성전’의 나팔수 노릇에서 머물지 않는다. 알라신을 불러들여 이슬람인들을 한두름에 묶어 모독하는 글을 버젓이 싣는가 하면, 사설을 통해 “어쩌면 뉴욕 테러는 ‘아프간 인민에 대한 응징’을 정당화할 것이다”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contsmark6|테러가 전쟁으로 확산되고 그 여파가 한반도에까지 미치기를 은근히 바라는 수구냉전 세력의 속내를 숨기지 못한다 할지언정, 테러범이 누구인지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는데, 또 설령 오사마 빈 라덴이 테러 사주범으로 확인된다 하더라도 아프간인민이 응징되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들의 생명은 그렇게 하찮은 것인가?
|contsmark7|이번 테러 사건은 그것이 주는 강렬한 인상에 비해, 그 배경에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 범이슬람권과 미국·러시아, 걸프전쟁과 이슬람 내부의 갈등, 석유문제, 군산복합체, 돈세탁, 전지구적 빈익빈부익부 현상 등의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 사건을 단순화하여 바라보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아야 되는 까닭이다.
|contsmark8|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부시가 선언한 ‘악에 맞선 선의 성전’과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의 ‘성전’ 사이에 한국을 어디쯤에 자리매김할 것인가를 위한 모색이다. 그것은 강력한 이해당사국이며 세계 여론을 주도하는 미국의 여론에 휩쓸리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contsmark9|그리하여, 테러를 반대하는 것과 전쟁을 반대하는 것이 양립 가능하다는 주장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가치에 대한 물음과 더불어,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와 죽음을 무기로 하는 자의 비극적 충돌을 빚는 데까지 이른 모순과 증오에 찬 세계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다.
|contsmark10|홍세화‘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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