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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따지고 보면 조선일보 혼자 EBS 역사 강의를 왜곡했다고만은 할 수 없다.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EBS 역사 강의가 좌편향적이라고 왜곡한 1차 당사자는 ‘공정언론시민연대’라는 단체기 때문이다. 이들이 1차로 작성한 모니터 내용을 조선일보가 강사 본인이나 EBS에 별도의 확인 절차 없이 그대로 인용해 버렸고, 결국 그게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러니 왜곡을 한 1차 당사자는 조선일보가 아니라 공정언론시민연대라 할 수 있다. 조선일보가 주인공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주인공인 공정언론시민연대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고 신뢰도 높은 단체이기에 조선일보가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인용했을까 싶었다. 서둘러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들의 홈페이지를 들어가 봤다. 첫 화면에서 가장 처음에 눈에 띄는 것이 다름 아닌 ‘이승만’ 관련 내용. 홈페이지 상단 메인 섹션의 세 꼭지 중 두 꼭지가 이승만 관련 내용이었다.

▲ <조선일보> 2011년 8월 4일자 4면 기사 ⓒ조선일보

이승만에 대해서는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궁금해 클릭 해 들어가 보니, 어라? 두 꼭지 모두가 조선일보에서 올렸던 기사를 단순히 링크해 놓은 거였다.(인용이 아니라 조선일보 홈페이지 기사 화면이 그대로 뜬다) 이승만 다큐멘터리를 방송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며 과거에 KBS에서 방송했던 드라마 〈1945〉와 〈인물현대사〉등을 ‘좌파 미화 드라마’로 규정하며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그 오른쪽에 있는 ‘사회 참여 연예인’ 내용은 동아일보 기사를 역시 단순 링크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공정언론시민연대는 조선일보의 기사 내용, 다시 말해 조선일보가 바라보는 ‘방송’(혹은 언론)에 대한 시각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정리하면 이렇다. 공정언론시민연대는 조선일보가 말한 “우리나라(방송 등)의 역사의식이 좌편향 적이다”라는 걸 그대로 가져와 링크하고, 조선일보는 공정언론시민연대가 주장한 “EBS 역사 강의는 좌편향이다”라는 걸 그대로 가져와 기사화 한다. 서로가 서로를 ‘인용’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반복함으로써 우리나라 방송의 역사 인식이 ‘좌편향’적이라는 논리를 확대 재생산(이슈화) 시킨다.

▲ 김진혁 EBS PD

사실 이러한 방식의 확대 재생산은 흔히 말하는 ‘루머’나 ‘유언비어’가 힘을 얻는 방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사실여부 자체보다는 그걸 ‘누가’ 이야기해줬는지를 가지고 논리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식이 차용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와 공정언론시민연대는 서로가 서로에게 사실의 ‘근거’가 되어 조선일보는 공정언론시민연대를, 공정언론시민연대는 조선일보를 근거로 자기의 논리를 강화하는 것이다.
흔히 이러한 방식을 업계 전문 용어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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