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렙법 8월 입법만이 목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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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언론인 총파업 준비하는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

말하는 사이사이 그는 연신 담배를 태웠다. 질문이 던져질 때마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답변을 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는 듯, 중간 중간 잠시 말을 멈추고 고저를 조절했다. 때때로 기자에게 질문도 했다. “내 말이 너무 원론적인가.” 답을 구하는 질문은 아닌 듯 했다. 곧바로 이어진 말 때문이다. “어려울수록 정공법으로 가야 한다.”

이달 말로 예정된 총파업을 위한 찬반투표 마감일을 사흘 앞둔 지난 15일 서울 태평로 전국언론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이강택 위원장의 마음은 바빠 보였다. 녹록치 않은 현실에서 총파업을 준비해야 하는 위원장의 당연한 모습이겠거니 했다. 인터뷰를 시작할 땐 말이다.

하지만 그는 녹록치 않은 현실에 방점을 찍고 있지 않았다. 때문에 현실을 앞세워 “지금”과 “미디어렙”이어야 할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이강택 위원장과의 대화를 요약·정리한 내용이다.

▲ 이강택 전국언론노조 위원장 ⓒ언론노조
-곧 총파업 찬반 투표가 끝난다.

“전반적으로 보면 예상보다 괜찮다. 휴가철 등 여러 악조건이 있지만 지상파 방송과 신문 등 40개가 넘는 사업장에서 이미 찬반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MBC 같은 경우 벌써 70% 이상 진행됐다고 한다. 마감일인 18일까지 60여개 사업장에서 (찬반투표가) 진행될 것 같다.”

-총파업을 고민한 순간들이 많았다. 그런데 왜 지금, 미디어렙 문제를 앞세워 하려는 건가.

“파업이라는 강도 높은 투쟁을 택하기 위해선 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 상황과 준비된 주체적 역량, 이 두 가지가 맞아야 한다. 이게 잘 맞아야 성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엔 준비 상태에 비해 객관적 상황 자체가 파업을 선택하게 한 측면이 크다. 8월은 종합편성채널이 광고 직접영업을 목전에 두고 있는 때로, 이에 따라 SBS와 MBC의 자사 미디어렙 설립이 가시화될 수밖에 없다. 지금 분수령을 만들지 않으면 흐름을 막을 수 없다. 더구나 주변 상황도 그리 비관적이라고 보진 않는다. 지금은 흔들바위와 같은 정세다. 저들의 강경함 이면엔 지금 대못을 쳐야만 한다는 조급증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제대로 힘을 합쳐 밀어대면 방향은 금세 변화할 수 있는 형태다.”

-하지만 미디어렙에 대한 이해는 방송과 신문뿐 아니라, 방송사별로도 차이가 있다.

“KBS와 MBC, SBS 등 지상파 방송 3사는 상대적으로 고지대에 있는 주민들인 게 맞다. (종편채널 직접영업이란) 홍수가 나도 중소방송과 달리 침수되진 않는다. 하지만 침수되지 않을 뿐, 비가 많이 내리면 활동하기도 어려워지고 산사태 등의 위험에도 직면하게 된다. 미디어렙은 고지대 주민이라 하더라도 외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종편 광고 직접영업에 대한 반대는 같지만, 자사 미디어렙 문제에 대해선 방송·언론인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다.

“그와 관련해서 먼저 언론인들을 대단히 특별한 존재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다. 계급에 맞는 투표를 하는 계층이 많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MBC라는 회사가, SBS라는 회사가 만든 논리에 대해 언론인으로서, 노동자로서 이해가 어떻게 다른지 정확히 구분 못하고 휩쓸리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때문에 투쟁이 중요한 것이다.”

-좀 더 설명이 필요한 것 같다.

“어떤 사안이든 실제로 사회적 논란이 되고 생각해 볼 계기가 주어져야 한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진짜 내 이해관계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투쟁 속에서 진짜 이해관계도 찾고 의식도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언론법 투쟁 이후 우리는 얼마나 제대로 싸웠을까. 미디어렙 관련 싸움은 언론법 싸움의 연장선이다. 업보들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진정성 있는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때문에 꼭 8월에 미디어렙 법안을 만들어야만 승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8월 총파업은 시작일 뿐이라는 얘기로 들린다.

“그렇다. 미디어렙 법안이 8월에 만들어지면 승리이고, 아니면 패배라고 보는 건 잘못됐다. 싸움이라는 건 결국 우리가 한 만큼,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8월에 법안을 만들어야만 승리라고 생각하는 건 기회주의적인, 전형적인 무임승차 태도다.”

-하지만 총파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뒤에 따르는 파장이 있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현실적인 문제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아닌가.

“시험이 코앞인데 출제 경향만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시험이 내일이면 중요한 건 공부하는 거다. 실천할 때라는 것이다. 희생은 조금도 않고 지금 상태에선 안 되지 않겠냐는 식의 패배주의는 더 이상 안 된다. 전체 상황이 개선돼야 한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지금의 집단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등의 문제만 생각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실천이 이뤄지는 만큼,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이 싸움 앞에 모든 걸 던지고 책임을 질 각오가 돼 있다. <PD저널>에서 진행한 공영방송 노조위원장 대담을 보면 ‘김진숙 정신’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김진숙라는 사람이 승리할 것인지 앞뒤를 재고 크레인에 올랐을까. 원칙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진 것이다. 지금 언론인들도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본다.”

-국회 일정에 맞춘 총파업일 텐데, 8월 국회가 제대로 가동되긴 어려워 보인다.

“반복하는 것 같지만, 이번 싸움에서 우리의 목표는 3가지다. 첫 번째는 우리 내부에서 언론 노동자들이 좀 더 확고한 의식으로 무장해 단결을 유지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우리 싸움에 대한) 국민적 정당성을 얻는 것이다. 세 번째가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입법적 성과를 얻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앞의 두 개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세 번째만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를 제대로 하면 세 번째 목표는 자연스레 달성되는 것이다. 만에 하나 (여야의) 정치적 타협이 이뤄져 앞의 두 목표가 제대로 달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입법적 성과를 보인다 해도 이는 그리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내가 너무 원론적인 건가. 하지만 어려울수록 정공법, 정석대로 가야 한다.”

-민주당에선 국회가 제대로 가동되지 못할 것을 대비, 중소방송지원법 등을 고민하고 있다.

“민주당의 그런 아이디어 이면의 생각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미디어렙 법안 문제는 전체 방송에서 중소방송이 살아남느냐에 대한 게 아니다. 종편채널 등장 이후 언론이 어떤 기저 위에서 작동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조·중·동 종편채널이란 상업적인 블록으로 언론을 재편하려는 (여권의) 의도를 막을 수 있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이는 이 사회에서 정권 교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내년 총선 이전 옥석을 가릴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문제를 중소방송의 생존으로 국한해 바라본다는 건 민주당이 얼마나 (방송·언론에 대한) 철학이 빈곤한지 방증하는 게 아니겠나. 게다가 (법안의) 실효성 또한 부족하다. 종편채널이 중소방송에 대한 지원 의무를 지려 하겠나. 중소방송지원법은 가장 마지막에 응급처방으로나 할 수 있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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