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리더와 오너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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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리더와 오너의 차이
  • 공태희 OBS PD
  • 승인 2011.08.24 15:0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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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감독 경질은 SK 팬의 거센 분노를 일으켰다. 원년 OB 베어스의 코칭스태프로 시작, 거의 모든 프로야구단의 사령탑을 맡았던 팀마다 돌풍을 일으켰던 야신 김성근. 만년 하위로 분류되던 SK를 이끌었던 4년 동안, 세 번의 우승과 한 번의 준우승이라는 전설을 만든 노감독의 석연치 않은 경질에 대한 당연한 결과였다.

그가 보여준 리더십은 히딩크와 함께 경영학 교재로 자주 인용될 만큼 독특하고 독창적이었다. 세간에는 김성근 리더십의 요체가 고교 야구팀보다 혹독한 기초 훈련과 철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한 ‘승리를 위해 재미를 양보한 야구’라고 알려진 듯하다. 그러나 정작 김성근 야구의 독창성이자 천재성이 나오는 지점은 프로 스포츠계에서 ‘조직의 승리가 개인에게 적절히 배분되는 선순환 구조의 최초 구현’이라 할 수 있다.
김성근 감독은 기존의 관행처럼 슈퍼 엘리트 선수 한 두 명에 의존하는 야구를 철저히 지양했다. 그가 맡는 팀마다 스타플레이어가 부족하기도 했지만 가능성 있는 다수의 무명 선수를 최강의 존재감을 지닌 ‘키 플레이어’로 만들어 승리를 견인하게 만드는 팀플레이를 지향했다.

그 결과 다수가 만든 승리의 대가는 공정하게 분배되는 시스템으로 이어졌다. SK는 수억 원대 연봉을 호가하는 스타 선수가 가장 적으면서도, 선수단 전체의 평균 연봉이 타 구단에 비해 월등히 높다. 팀의 승리와 우승에 선수단 전원이 기여했고, 그 결과 선수단 전체가 열매를 골고루 나누어 가질 수 있었다. 그야말로 성장과 분배가 공존하는 모델을 만든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앞서 밝힌 이 두 가지가 ‘김성근 리더십’의 요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과장되게 빗대자면, 사상 최대의 수출 호조와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면서도 경제성장의 대가가 일부 대기업 집단에게만 집중되는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그런 불세출의 리더가 더 큰 성과를 만들 기회를 왜 SK 오너는 박탈했을까? 그리고, 오너와 리더의 차이는 무엇일까?

리더와 오너의 차이를 단순하게 설명하는 말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일 것이다. 영국에서 절대 왕정의 폐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시작한 이 개념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지만, 적어도 현대 한국에서 민영기업 오너 운영 방식은 절대왕정의 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 공태희 OBS PD

 

물론 희대의 성군이 계승된다는 보장만 있다면, 절대 왕정도 결코 나쁜 체제는 아니다. 다만, 오너는 대주주로서 ‘군림’하되 ‘통치’는 리더(의 자질을 갖춘 전문 CEO)에게 일임해야 한다는 전제가 충족되어야 하지만. 결국 불세출의 성과를 올린 리더의 운명 역시 오너의 가벼운 손짓에 있음을 새삼 자각한다. 그리고 SK 오너일가와 프런트에 전하고 싶다. 단지 태어났을 뿐인 오너가 각고의 노력으로 육성된 리더를 가볍게 여기지 말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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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2011-08-25 03:21:53
길지 않은 글이지만 한글자 한글자 폐부를 찌르는 글이었습니다.
더불어 한글자 한글자마다 눈물이 맺히네요.
마지막 문단은 정말 명문인가봐요.
그부분에서 울어버렸어요ㅠㅠ

멋지십니다... 2011-08-24 20:15:12
통찰력있고 논리정연한기사....피디나 기자는 이정도는 되어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듭니다..."단지 태어났을뿐인 오너가 각고의노력으로 육성된리더를 적어도 가볍게는보지말라" 명언이십니다 ㅋㅋㅋ

ㅠㅠ 2011-08-24 15:57:48
단지 태어났을 뿐인 오너가 각고의 노력으로 육성된 리더를 가볍게 여기지 말 것을.

이 문구..ㅠㅠ

김민주 2011-08-24 15:52:46
글 잘 읽었습니다
"단지 태어났을 뿐인 오너가 각고의 노력으로 육성된 리더를 가볍게 여기지 말 것을." 마지막줄은 명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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