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따져보기] 비극적 로맨스 ‘공주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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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드라마 ‘공주의 남자’ ⓒKBS
비극은 시작되었다. 수양대군(김영철)은 김종서(이순재)의 목을 베었고 그의 아들 김승유(박시후)는 세령(문채원)이 원수의 딸임을 확인했다. 경혜공주(홍수현)와 정종(이민우)은 단종(노태엽)을 지키기 위해 금성대군(홍일권)과 손을 잡고 수양대군에 맞선다. 김승유는 간발의 차이로 참수를 면하고 유배지로 향한다. 드라마 초반, 풋풋한 하이틴 로맨스의 분위기를 유지했던 <공주의 남자>는 김종서의 죽음과 수양대군의 야심이 드러나며 비극적 로맨스의 한 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정종은 신면(송종호)을 붙잡고 울분을 터뜨리고 김승유는 세령의 목을 조른다. 아버지들의 정치가 두 연인의 삶을 뒤흔들며 피 냄새를 뿌리고 있다.

<공주의 남자>는 예고된 비극이다. 계유정난이 몰고 온 비극은 조선의 정치를 수렁에 빠뜨렸고 암흑기를 불러왔다. 여기에 픽션으로 가미된 승유와 세령의 러브스토리는 필연적으로 비극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드라마의 장르는 복합적이다. 로맨스기도 하고 비극이기도 하며 동시에 정치극이다. 이 드라마의 재미는 바로 거기에 있다. 초반 주연 배우들의 연기력에 대한 불만과 사극에 대한 관습적인 기대도 있었지만 현재 <공주의 남자>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극의 캐릭터나 배우의 연기력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인 셈이다.

<공주의 남자>는 소위 ‘팩션’ 붐에서도 흥미로운 위치를 차지한다. 이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 속에서 가상의 관계와 사건을 집어넣으며 전체적인 균형을 잃지 않는다. 초반의 로맨틱한 분위기와 대비되는 연출이 극의 비극을 더하고, 과장되거나 비뚤어진 악당을 등장시키지 않고서도 충분히 위악적인 인물들을 등장시킬 뿐 아니라, 그들에게 모두 그렇게 행동해야 할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극의 개연성과 논리성을 지켜내고 있다.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홍보문구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공주의 남자>는 셰익스피어가 확립한 전통적인 비극의 룰에 충실하다. 무엇보다 <공주의 남자>가 역사적 힌트로부터 얻은 상상력으로 쌓아올린 탄탄한 이야기란 점에서 다른 사극들과 차별화된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여기서 눈에 띄는 건 경혜공주다. 이 비운의 공주는 풍전등화의 정치 속에서 아버지와 세자를 지키기 위해 일찌감치 각성한다. 그 각성은 세속적이면서도 현실적인데 그 곳에 낭만과 낙관이 들어설 자리는 아예 없다. 특히 경혜공주가 세령과 김승유의 비극적 관계의 단서를 제공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녀의 변화는 드라마의 또 다른 재미가 되고 있다.

▲ 차우진 대중문화평론가
아버지들이 만들고 지배하는 세계가 <공주의 남자>의 한 축이라면 경혜공주를 비롯해 세령과 김승유가 저항하는 세계가 다른 한 축이다. 마냥 풋풋하던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아버지가 만든 권위에 대항하며 생존을 꾀하지만 언제나, 이 시도는 실패하기 마련이다. 그 속에서 세령과 승유는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 건가. 혹은 그 사랑은 어떻게 실패하게 될 것인가. 상처는 또한 어떻게 치유되거나 봉합될 것인가. 예고된 결말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계속 지켜보게 되는 이유다. 이 철없고 낭만적이기만 했던 두 젊은이의 비극적 삶이 곧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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