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의 성공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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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운의 무한맵] 엄격한 자기관리 · 미디어에 대한 높은 이해가 성공요인

대한민국에서 대중적 인기로 유재석을 뛰어 넘는 사람은 없다. 유재석은 1991년 코미디언으로 데뷔해 탁월한 입담과 진행 솜씨로 ‘대기만성형’ 스타의 상징이 됐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의 아이콘이 된 그는 현재 MBC <무한도전>, <놀러와>, KBS 2TV <해피투게더>, 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의 중심으로 활약하며 ‘21세기 예능’을 이끌고 있다.

미디어는 이런 유재석을 칭찬하기 바쁘다. ‘안티’도 없고, 구설수에 오르지도 않고, 꾸준히 자기관리를 하며, 항상 동료를 보살피는 절정의 리더십을 갖추고, 촬영 중에도 늘 어르신을 공경하고, 나보다는 남을 항상 배려하는 그의 마음 씀씀이를 보며 미디어가 가만있을 리 없다. 그러나 ‘착하다’, ‘성실하다’는 감상적인 칭찬만으로는 유재석의 성공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연예인은 PD·작가와 함께 자신의 모습을 하나의 ‘상품’으로 생산한다. 때문에 미디어에 비춰지는 유재석의 모습 또한 그의 ‘온전한’ 모습은 아닐 수 있다. 유재석이라고 ‘캐릭터 생산구조’에서 예외일 순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0년대 유재석은 ‘메뚜기’라는 캐릭터(상품)를 통한 외모 자학과 ‘슬랩스틱’ 코미디를 통해 근근이 방송생활을 연명했다. 그러다 그는 1990년대 말 KBS 2TV <서세원 쇼>에서 보조출연자로 입담을 보이며 인기를 올렸다. <동아일보> 1999년 7월 5일자 ‘입심 좋아 뜬 개그맨 유재석’이란 제목의 기사에 따르면 그는 성공을 위해 스스로를 엄격히 다뤄왔다고 고백한다.

유재석은 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다양한 소재와 사례를 찾기 위해 PC통신에 접속하는 것은 기본이고 신문의 주요 기사는 빼놓지 않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쾌한 언어유희가 유치한 말장난이 되는 것도 한 순간”이라며 본인의 개그에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음을 드러냈다. 당시 그의 모습은 IMF 금융위기 이후 무한경쟁체제에서 생존 가능한 ‘인간형’의 한 예였다.

“말하는 대로/말하는 대로/될 수 있단 걸/눈으로 본 순간/믿어보기로 했지”, “멈추지 말고/쓰러지지 말고/앞만 보고 달려/너의 길을 가”라던 <말하는 대로>의 가사처럼 달려온 유재석은 21세기 토크쇼 열풍과 함께 예능 1인자로 올라선다. 2000년대 후반에는 김태호 PD와 <무한도전>이라는 전무후무한 리얼 버라이어티를 이끌며 ‘초인적’ 면모를 보인다.

유재석이 <무한도전>에서 했던 장기프로젝트는 △스포츠댄스 △에어로빅 △봅슬레이 △카레이싱 △WM7 프로레슬링 △조정 등이다. 그는 모든 프로젝트에서 남들보다 많이 연습했고 흐트러짐 없는 모습과 공정한 태도로 동료들의 모범이 됐다. 정치인과 직장상사에 실망한 시민들에게는 ‘이상적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장기프로젝트를 통해 PD와 작가가 구현할 수 없는 캐릭터를 스스로 만들어냈다. 이는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캐릭터 생산구조’라는 가상현실을 뛰쳐나온 것과 같았다.

▲  MBC '무한도전-조정특집'의 한 장면. ⓒMBC 화면캡처
물론 유재석이 과거 <무한도전> ‘정신분석’ 특집에서 ‘사회생활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고 있기 때문에 반듯한 이미지와는 다른 욕망이 있을 수 있다’는 진단을 받기도 해 여전히 ‘만들어진 캐릭터’라는 지적은 가능하다. 영화 <아메리칸 싸이코>의 주인공 패트릭 베이트만(크리스찬 베일 분)이 완벽한 ‘서구백인남성’의 모습을 구현하지만 그 이면에는 살인과 파괴의 욕망이 있었던 것처럼 유재석이 비슷한 경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유재석이 <무한도전> 등을 통해 대부분의 시청자에게 웃음과 눈물을 주며 하나의 ‘울림’으로 다가온다는 점을 미뤄봤을 때, 그는 ‘유재석’ 본연의 캐릭터로 스스로 성장하며 방송에 임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다면 유재석의 성공비결은 ‘엄격한 노력’과 열정 뿐일까. 한 가지 더 있는 것 같다. 바로 유재석의 ‘미디어에 대한 이해’다. 유재석은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게 된 2000년대 이후부터 인터뷰를 안 하기로 유명한 연예인이 됐다. 왜 안 할까. MBC <놀러와>에서 유재석과 호흡을 맞췄던 신정수 PD는 <PD저널>과의 통화에서 “재석이 성격상 누구는 인터뷰 해주고 누구는 안 해주게 되는 상황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신정수 PD는 “재석이는 (인터뷰를 못한) 기자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될까봐 걱정한다. 그래서 차라리 모두와 인터뷰를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유재석의 입장은 미디어에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불필요한 구설수를 만들지 않고, ‘1인자’만이 누릴 수 있는 신비주의 전략을 구사해 ‘상품가치’를 유지하며, 기자들에게는 형평성 있는 인물로 거듭나고, 시간도 아끼는 ‘1타 4피’ 전략이다.

예컨대 모든 기자들에게 동등한 인터뷰 기회가 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몇 몇 기자들은 유재석에게 서운한 마음을 갖고 악의적인 기사를 쓸 확률이 높다. 이 경우 인터뷰는 패착이 된다. 유재석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고 봐야한다. 유재석은 모두와 원만한 관계를 위해 아무도 안 만나는 방식을 택했다.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전략적인 인물이다.

이와 관련 “재석이는 인터뷰 대신 방송을 통해 (자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신정수 PD의 지적은 상징적이다. 유재석에게는 인터뷰라는 홍보수단에 기대지 않고도 프로그램만으로 인기를 이어가겠다는 일종의 ‘신념’이 있다.

SBS 홍보팀 관계자는 <런닝맨>의 현장공개가 어려운 이유로 유재석을 꼽은 적이 있다. “유재석이 촬영현장에 기자들이 오는 것을 굉장히 꺼려한다”는 것이었다. 기자들이 옆에 있으면 신경이 쓰이게 되고 녹화에 집중할 수 없다고 했다. 편집이 불가능한 현장에서 ‘원치 않았던’ 사건이 일어날 경우 기자들이 ‘기삿거리’를 확대 해석하거나 왜곡한다는 점을 유재석이 모를 리 없다.

유재석은 기자라는 ‘제 3의 관찰자’ 대신 스텝들과 한 몸이 되어 프로그램에 ‘올인’ 한다.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을 과장하고 현재의 인기에 겸손을 떨어야 하는 기자와의 만남 대신, 장충체육관에서 욱신거리는 온 몸을 들어 정형돈에게 킥을 날리고 2000m 조정 거리를 완주하고 떨리는 손으로 밥을 먹는 순간을 택했다. 그는 그야말로 예능에 삶을 바쳤다.

▲ MBC '무한도전-팬 미핑' 편에서 유재석의 모습. ⓒMBC 화면 캡처
독일의 대표적 미디어이론가 노르베르트 볼츠는 자신의 저서 <미디어란 무엇인가>에서 “오늘날 스타는 미디어가 선별한 생산물”이며 “매스미디어는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듯함과 청중의 반응을 토대로 작동한다”고 지적한다.

유재석은 미디어가 선별한 생산물이지만 기자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그럴듯함과 청중의 반응으로 작동하는’ 매스미디어의 불확실성에서 자유롭고자 한다. 대신 그는 그가 믿는 PD들과 함께 아이템을 기획하고 수십 시간을 촬영하며 완벽한 연출, 단 한 순간의 감동과 웃음을 위해 몸을 가꾸고 레퍼토리를 준비하며 카메라 앞에 서기를 반복한다. 유재석의 성공의 이면에는 이처럼 미디어에 대한 높은 이해가 전제된 ‘선택’과 ‘집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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