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방송의 날’이 달갑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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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방송의 날이 다가오고 있지만 국민과 함께 하는 ‘우리들의 잔치’로 그날을 기다리는 방송인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언제부터인가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과 광고주, 그리고 방송사 경영진 등이 모여 샴페인을 터뜨리는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기 일쑤다.

방송을 대하는 우리와 그들의 현격한 인식 차이는 지난해 방송의 날 기념식에서 행한 이명박 대통령의 축사에 그대로 담겨있다. 당시 이 대통령은 “방송은 국익과 관련이 깊다. 국익이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하는 것이 국익을 유지하는 것인가 하는 점에 방송이 관심을 두었으면 좋겠다”고 했는가 하면 “방송은 젊은이들이 원하는 좋은 일자리를 많이 창출할 수 있는 분야”라고 밝혔다.

민주주의 발전 및 확대를 위한 역할, 정권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관심 등 정작 방송이 지켜야할 가치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오직 방송은 국익에 보탬이 되고, 일자리 창출의 도구가 돼야 한다는 천박하기 짝이 없는 논리였다. 그러나 불과 1년도 안 된 지금 그 천박함은 점차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대다수 방송사가 4대강 사업이나 한진중공업 사태, 반값 등록금 등 정부 입장에서 볼 때 눈엣가시 같은 사회적 아이템에 대한 PD들의 제작 열정을 철저히 뭉갬으로써 정권의 부담은 덜어준 반면 KBS에서 보듯 지난해 G20 관련 방송을 무려 3300분이나 편성하거나 대통령 부부를 <아침마당>에 출연시키는 등 정권 홍보에 앞장섰다.

‘문제적 인물’로 낙인찍은 PD들에 대해 징계와 보복 인사를 통한 손발 묶기, 이른바 ‘소셜테이너법’으로 사회참여 연예인과 지식인들의 입에 재갈 물리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6:3 편파적 결정을 통한 비판 프로그램 솎아내기 등도 이어졌다. 이쯤 되면 대통령이 원하는 방송의 국익 추구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보수신문에게 종합편성채널 진출의 길을 터주더니 “정부가 종편이란 아기를 낳았는데 걸음마할 때까지는 보살펴야 한다”는 해괴망측한 이유를 들어 직접 광고영업과 황금채널 배정, 먹는 샘물과 의약품 광고 허용 등 선물세트 포장에도 혈안이다. 일자리 창출이란 허울 좋은 미명 아래 지상파의 생존력을 옥죄는 짓이다.

2011년 방송은 ‘공영’이란 이름이 부끄럽게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충실히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방송의 날이 제정된 것은 지난 1964년의 일로, 1947년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국제무선통신회의에서 JO라는 일본 호출부호 대신 우리의 독자적인 호출부호 HL을 배당받아 전파 주권을 회복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전파 주권은 되찾았을망정 국민을 위한 방송 주권의 실현은 아직도 요원하다는 것이 마흔 여덟 번째 맞는 방송의 날이 달갑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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