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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초한 가톨릭 신자이지만, 결례를 무릅쓰겠습니다.
얼마 전 여러 목사님들께서 ‘기독교 정당’의 설립을 선포하셨더군요. 민주주의국가에서 누가 정당을 세우고, 강령에 무엇을 담느냐를 문제 삼을 건 없지요. ‘기독교 정당’의 출현이 다종교 사회의 평화를 해치리라는 우려도 지나봐야 알 일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목사님이 사숙하는 어느 원로 목사님께서 “하느님의 명령이니 정당을 세우라”고 했다는 말씀을 듣고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기독교 정당’의 ‘극우적 입장’이야 발기인들의 면면을 볼 때 놀랄 일이 아니지만, 이른 바 “하느님의 명령”을 내걸고 교회가 ‘정치세력화’하는 과정에서 신도들에게 닥칠 일을 생각하니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천 년 전 “하느님이 원하신다”는 교황의 말 한 마디에 십자군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팔레스타인 전역이 200년 동안 피로 물들었지요. 그러나 전쟁 못지않게 참혹한 범죄는 인간의 탐욕을 절대자의 섭리로 받아들이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조작하고 사고를 마비시킨 것입니다. 그러기에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 부르지 않습니까?

한국 사회에서 성직자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처럼 여겨집니다. 그들의 언어는 내용과 무관하게 ‘복음’으로 들리기 십상입니다. 기복적 신앙의 오랜 역사가 설교대에 선 분들을 ‘권력’으로 만든 까닭입니다. 아마도 목사님은 거리낌 없이 기독교정당의 강령을 “하느님의 명령”으로 설파하시겠지요. ‘좌익 척결, 자본주의 수호, 사회주의적 복지의 배격’ … 목사님을 따르는 신도들은 ‘주님의 결연한 증거자’ 앞에서 각자의 생각과 삶터의 애환을 모두 접고 이 새로운 ‘계시’들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결국 목사님의 정당은 또 하나의 교회가 되고 신도들은 오로지 목사님과 똑 같은 눈길로만 세상을 바라보도록 강요받을 것입니다. 수많은 이들이 열렬한 당원으로 이름을 올리며 주님 백성으로서 의무를 다하겠고, 회당마다 정당원의 수(數)를 놓고 경쟁이 붙겠지요. 이는 자유로운 민주적 정당 결성의 정신을 훼손함은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종교를 구실로 개인의 사상적 자유를 억압하는 폭력임에 틀림없습니다.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그런 염려를 하냐고요? 성전(聖殿)도 아닌 곳에서 현직 대통령을 무릎 꿇게 만드는 ‘권력’이 ‘하느님의 이름’을 차용해 못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 평화방송 TV 변승우 PD

예수는 세상의 온갖 굴레로부터 인류를 자유롭게 했습니다. ‘사랑의 실천’을 제외한 어떤 이념과 율법도 영혼을 가둬놓을 수 없음을 죽음으로 일깨웠지요. 그래서 예수의 십자가는 언제나 자유와 해방의 상징입니다. 목사님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세운 정당이 우리의 구세주를 욕망의 편협한 사슬로 묶어 다시 십자가형에 처하지 않을까 겁이 납니다. 목사님께서 소위 ‘종북 좌파들’로부터 수호하려는 이 땅이 ‘오직 하나의 생각만을 절대자의 지상 명령으로 강요하는 곳’이라면 구태여 지켜내야 할 가치가 있겠습니까? 인간의 필요에 따라 하느님의 뜻이 좌우되는 교회 … 그 어두운 어느 구석에서 헐벗은 나그네처럼 눈물짓고 있을 성자(聖子)를 한 번만 만나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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