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밟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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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 MBC 창사50주년 특집 ‘아스팔트 위의 인생’

정글 같은 퀵서비스 업계의 열악한 실상을 이야기 해보겠다고 야심차게 덤벼들었지만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답은 무척 회의적이었다. 스스로 밑바닥 인생이라고 치부 해버린 그들의 열등감이 카메라를 내 팽겨 쳐버린 상황도 있었다. 퀵서비스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약 14만에서 17만 명으로 추산된다. 사업에 실패한 이들부터 신용불량자, 그리고 말 못할 사연들을 가득 안고 있는 이들까지….

우선 그들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듣기로 했다. ‘퀵 라이더 카페’에 가입해서 글을 남기기도 했고, 어쩌다가 연락이 닿은 퀵서비스 배달원들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술을 한 잔 마시며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무작정 아스팔트 위를 걸으며 만나는 퀵서비스 배달원들에게 제작진의 취지를 이야기 했고 때로는 그들의 숨죽인 분노를 들어주며 한 명 씩, 한 명씩 촬영에 협조할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방송이 끝난 후 곰곰이 생각해보니 촬영에 응해 준 아스팔트 위의 인생들은 모두 거친 삶이었다. 그리고 고마운 삶들이었다. 카자흐스탄에서 온 고려인 빅토리아 위카와 재혼을 하고 퀵서비스 업계에서 상위 5%에 들어갈 정도로 열심히 오토바이를 탄 손원호씨. 공사장 5층에서 떨어져 1년을 병원에서 보내고 일을 찾던 중 퀵서비스야 말로 내가 할 일 이라고 자부심을 느끼며 오토바이를 탄 유순열씨. 동대문에서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을 퀵서비스 일을 하며 딸들과 떨어져 살고 있는 이미경씨.

촬영하는 동안 그들과 동고동락을 했다. 이른 아침부터 하루 종일 그들의 일상을 면밀히 들여다보았다. 제작진이 뒤에 있든 없든 묵묵히 물류를 전해주기 위한 그들의 노력을 카메라에 담아볼 수도 있었다. 분별한 신호 위반과 거침없는 속력은 한 푼이라도 더 벌려는 그들의 삶의 연장선 일 뿐 아니라 물류를 보낸 사람들이나 받을 사람들의 쉴 새 없는 독촉 전화의 결과였다.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오토바이의 바퀴는 쉴 새 없이 아스팔트를 달구었다. 처음에는 속력이 15km부터 시작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100km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한 퀵서비스 배달원은 “주위에서 누가 죽든 누가 다치든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을 했다. “산재라는 것은 꿈도 꾸지 않고요. 자기가 번 돈의 반이 수수료와 유지비로 다 빠져나가는데 자비로 산재를 들만큼의 여유도 없으면서 누가 보험을 들려고 하겠어요.”

그들은 자영업자다. 그렇기에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번 돈의 반이 유지비와 수수료로 사라지게 되며 무조건적인 속력과 시간과의 싸움에서 몸을 내 맡기는 것이 당연한 듯 보였다. 퀵서비스의 94.7%가 사고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고객과, 시간과, 돈, 아스팔트 위에서 어떻게라도 연명해야 하는 삶속에서 무조건 밟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척박한 일상이, 아니 전화 한통이 죽음으로 밀어붙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스팔트 위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이 내뱉는 분노는 다양했다. 23% 라는 어마어마한 콜 중계 수수료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고, 콜센터의 쿠폰 지급 문제, 단말기 콜 프로그램 사용 요금,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에서 퀵서비스를 바라보는 편견과 인식에 대한 문제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솔직히 그들의 열악한 퀵서비스 업계의 일상과, 닫힌 인권과, 희망을 잘 풀어내지는 못한 것 같다. 그들의 상황을 10분의 1밖에 이야기 해주지 못한 것 같아 못내 아쉽기만 하다.

방송을 끝내고 홀가분한 마음 보다는 먹먹한 느낌이 들었다. 잘 생각해 보면 아스팔트 위의 퀵서비스 배달원이 아닌 인생의 길 위에서 거칠고 순박한 다양한 군상들을 만난 것이 아닐까. 그들은 오늘도 달리고 있을 것이다. 시간에 쫓겨, 고객에 쫓겨, 돈에 쫓겨……. 오늘도 아스팔트 위에서 남들과 조금 다른 희망적인 인생을 설계하며 달리고 있는 퀵서비스 인들에게 심심한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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