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PD수첩’ 의 기억과 ‘도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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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최초 보도한 김재영 MBC PD

▲ 광주인화학교 성폭력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

2005년 10월, 불 꺼진 광주 인화학교의 풍경은 을씨년스러웠다. 교문 앞 어두운 골목길에서 서서히 들려오는 학생들의 발걸음 소리에 숨죽였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을까. 기숙사에서 빠져나오는 학생들을 기다리던 PD는 이렇게까지 해야 진실을 밝혀낼 수 있는 상황이 고민스러웠다. 청각장애인이자 미성년자인 학생들이 기숙사를 탈출해 증언을 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그들은 스스로 말하고 싶었고, 나는 다만 듣기만 했다.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 그 때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취재차량 안에서 들을 수 있었던 그들의 증언은 충격적이었다. 상습적으로 자행되는 성폭행은 비로소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이 몸으로 하는 이야기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야만적인 행위에 대한 고발이었다. 부지런히 그 말을 세속의 언어로 옮기는 수화통역사도 울었고, 통역사의 말을 귀로 듣는 사람들도 울었다. 선정성이라는 선입견에 그것을 공중파의 언어로 옮기는 일은 힘들었다.

폭력이 가능하게 한 공간은 ‘학교’였다. 교육자로 포장된 인간들은 짐승으로 변해있었다. 스스로 짐승인 줄 모르는 추악한 괴물들이었다. 반성과 자책이 있을 줄 알았지만 그것은 나의 희망사항이었을 뿐이었다. 경찰, 검찰, 지역 언론 모두 그들에게 포섭되어 있었다. 학교라는 은밀한 공간에서 십 수 년 간 일어난 추악한 역사는 그래서 가능했다.

학교로 카메라가 들이닥치자 정작 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사실 확인을 위해 찾아간 교무실에서는 침묵만이 오갔다. 분명 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지만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말을 할 줄 모르던 장애인들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 결혼을 해 남편까지 있는 여인이 자신의 먼 과거를 기억해 추악한 역사를 들추어냈다. 재학생, 졸업생들의 이어진 증언들로 12명의 희생자와 8명의 가해자가 드러났다. 강간, 희롱, 인간 이하의 수모.  

▲ 광주인화학교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을 처음으로 보도한 ‘PD수첩’ 방송 한 장면. ⓒMBC 화면캡처

방송 이후 마지못해 나선 공권력은 이런 사실을 단죄하기에는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간 가해자들에게 학생들은 계란을 던졌고, 패륜아로 몰리기도 했다. 그렇게 싸운 시간이 6년. 재판과정을 신문으로 접한 영민한 소설가가 그들의 말 못할 고통을 공감해 소설화했고, 영화 <도가니>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말 못하는 가장 약한 존재들이 드러낸 불편한 현실을 접한 대중들은 분노했다. 왜? 정의가 사라진 사회에서 말을 하고 싶지만 말 할 수 없는 현실이 인화학교의 현실과 뭔가 맞닿아 있는 건 아닐까. 혹 우리들 모두가 인화학교의 피해자가 아닐까. 가끔씩 나조차도 불 꺼진 휑한 MBC에서 인화학교의 환영을 본다. 교육자들이 괴물이 될 수 있듯이 한 때 언론인이었던 사람들이 괴물로 변하는 환영. 혹시 현실인가?

▲ 김재영 MBC PD (2005년 ‘은폐된 진실 - 특수학교 성폭력 사건’연출)
잔인한 권력의 행사, 무기력하게 당하는 시민들, 침묵하는 대중 속에서 괴물은 자라난다. 인화학교 안 모순은 그렇게 자라났다. 지난 6년간 괴물들과 싸운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약한 존재였던 학생들이었다. 말을 할 수 없었던 그들은 울었고, 계란을 던졌다. 가장 약한 저항이었지만, 또한 가장 질긴 저항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던 불편한 역사는 소설이 되고 영화가 되었다. 기적과 같이 진실을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은 청각장애인들 스스로의 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들은 그렇게 그들에게 빚을 졌다. 그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인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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