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정민 PD에게 듣는 KBS 2TV <공주의 남자>

종영까지 4회를 앞두고 있는 KBS 2TV <공주의 남자>의 인기가 뜨겁다. 승유(박시후)와 세령(문채원)의 애절한 로맨스와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수양대군과 반 수양대군 세력들간 대결이 극의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이 드라마를 기획·연출한 김정민 PD와 <공주의 남자>의 기획과정부터 결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역사의 빈틈에서 피어난 상상력 = <공주의 남자>의 인기 비결은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잘 조합한 데서 나온다. 관행처럼 치르는 ‘역사 왜곡 논란’이 적었던 이유는 역사의 빈틈을 상상력으로 채웠기 때문이다. 

<공주의 남자>의 탄생은 2009년 어느 술자리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자리에서 <황진이>를 쓴 윤선주 작가는 김정민 PD에게 민담집 <금계필담>에 담긴 수양대군의 딸과 김종서 손자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원수지간의 이들이 계유정난를 피해 도망가던 중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내용이다.

정사에 없는 이 이야기는 수양대군의 딸 한명이 ‘기록’에서 없어진다는 점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로 다시 탄생한다. 여기에 세령의 사촌인 경혜공주와 정종의 기구한 운명까지 더해지면서 1년 6개월 뒤에 안방극장에서 <공주의 남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 내달 종영을 앞두고 있는 KBS 2TV <공주의 남자>. 결말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KBS

■ 계유정난과 수양대군의 재해석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의 권좌를 빼앗는 계유정난은 이미 사극에서 여러 번 다뤘다. MBC <조선왕조 500년 설중매>, KBS <한명회>, <왕과 비>등이 <공주의 남자>와 시대적 배경이 겹친다.

특히 <왕과 비>는 계유정난과 수양대군을 바라보는 관점이 <공주의 남자>와 대비되는 작품이다. <왕과 비>가 무력으로 왕권을 잡은 수양대군의 입장에서 서술한 ‘승자의 역사’라면 <공주의 남자>는 왕권을 뺏긴 단종의 편에 서서 바라본 ‘패자의 역사’다.

<공주의 남자>의 수양대군은 왕좌를 차지하겠다는 야망으로 조카와 동생을 죽이는 잔혹한 왕으로 그려진다. 지난 20회에는 자신의 뜻에 반하는 딸 세령에게 “심판관의 노비가 될 것”이라고 말한 장면에서 천륜마저 저버린 수양대군의 잔인한 면모를 볼 수 있다.

■‘추노’ 잇는 영상미=<공주의 남자>는 <추노>를 잇는 명품 사극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공주의 남자>는 <추노>를 찍었던 레드원(RED ONE)카메라보다 업그레이드 된 레드 엠엑스(RED MX) 카메라로 촬영했다.

1회부터 4회까지 영화와 같은 색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또 콘트라스트(대비)를 많이 줘 색감을 강조했다. 예산과 시간상의 문제로 4회까지만 이 카메라를 썼지만 초반에 시청자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반전 없는 복수극, ‘유령 커플’의 결말은=<공주의 남자>는 처음엔 ‘핏빛 로맨스’를 강조했지만 계유정난을 전후해서는 수양대군의 왕권 찬탈과정과 단종 복위 운동 과정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앞으로 이야기는 죽음으로 충절을 지킨 사육신의 뜻을 받아 김승유와 정종 등이 어떤 복수극을 펼칠 지가 남아있다.

하지만 역사가 극의 결론을 말해주듯 남자주인공 승유를 비롯해 반 수양대군 세력들의 복수는 끝내 이뤄지지 않는다. 단종에게 사실상 선위를 강요해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은 13년 동안 집권한다. 수양대군에게 원한을 품은 이들의 복수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수양대군의 말로도 행복하지 못했다. 무수한 희생을 치르고 얻은 권력은 13년을 넘기지 못했다. 수양대군의 장남과 둘째아들 예종도 모두 20살 전후에 절명했다. 또 당대에는 1인자였지만 후대의 평가는 냉혹했다.

남은 4회 동안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승유와 세령의 운명은 어떻게 전개될까.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