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영산강’ 또다시 관제방송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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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간은 KBS PD들에게 악몽의 시간이었다. 이병순 사장의 ‘학정’이 끝나는가 싶더니 대통령 특보 출신 사장이 들어와 방송을 추풍낙엽처럼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김인규 KBS 사장은 G20, 천안함, 원전수주 등 ‘관제방송’이라는 오명을 KBS에 남겼다.

김인규 사장과 길환영 부사장은 정권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밀어붙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PD들은 때로는 저항하고, 때로는 체념하며, 이 광란의 파티에 동원됐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1~2 주 전에 떨어진 ‘오더’ 프로그램을 제작하느라고 녹초가 된 상태에서 차마 제작스크롤도 넣지 못한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것을 보며 자괴감을 느껴야만 했다고 한 PD는 전했다.

잠시 잠잠하나 싶더니 KBS에서 또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려 한다. 그 출발점은 정부의 4대강 사업 완공에 맞춰 방송한다는 <영산강>(가제)이 아닐까 싶다. 지난 9월초 다큐멘터리 국장이 지시를 내린 이후 불과 40여일 만에 방송이 된다고 한다. 환경 프로그램을 40여일 만에 방송하다니,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그러고 보니 4대강 사업으로 발생한 생태 문제를 지적한 <환경스페셜-‘강과 생명’> 때와는 사측의 주문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때는 1년 동안 취재를 하라고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방송 시기를 늦추고 또 늦췄다. 완성도를 높이라고. 실은 방송을 최대한 미뤄 김을 빼려는 꼼수였음을 PD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불과 40여일 만에 방송을 하라고 한다.

뭐가 그리도 급했을까? <환경스페셜>로 정권에 욕을 보였으니 이번에는 반대되는 내용으로 벌충을 하자는 의도일 게다. 거기다 다음달 22일 4대강 완공과 26일 서울시장 재보선에 맞춰서 방송을 내보낸다고 한다.

PD의 양심을 지키라는 윗분들의 배려였을까? 제작진들이 반발하자 KBS 경영진은 두 말 없이 이 프로그램을 외주에 맡겨버렸다. 그리고 EP가 소리 소문도 없이 외주PD들을 데리고 방송을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계속 이런 식이었다. PD들의 반발이 우려되면 외주제작사에 맡겨 관제성 프로그램을 대량생산해 내는 구조다. 그동안 관제 프로그램으로 문제된 천안함, 연평도, 구제역 관련 특집방송들이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다.

<영산강>은 4대강 공사 준공에 맞춘 특집방송의 일부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영산강>을 특별히 주목하는 이유는 ‘4대강 공사’의 본질을 정면으로 왜곡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그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의도가 읽히기 때문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고 했다. 더 이상 이런 행태가 계속되어서는 안된다. PD들 또한 체념하지 말아야 한다. 어느 누구도 PD를 대신해 변명 해주지 않는다. 어둠이 짙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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