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의 ‘시련극복기’로 둔갑한 한국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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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KBS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초대대통령 이승만’

“왜 이승만인가.”

지난달 28일부터 사흘간 방송된 KBS 1TV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이 의문에 끝내 답을 주지 못했다.

<초대대통령 이승만>은 개화청년 이승만이 대한민국의 초대대통령이 되는 과정을 이승만의 입장에서 서술한 다큐멘터리였다. 이승만이 왜 반소·반공주의에 사로잡혔는지, 역사적 고비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해명하는 데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그의 역사적 과오는 축소되고 업적은 부풀려졌다.

▲ 지난달 28일부터 사흘간 KBS 1TV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 초대대통령 이승만>이 방송됐다.

■과오는 축소·두둔 = 방송은 이승만의 대표적인 과오로 꼽히는 위임통치청원과 친일파 청산문제, 4·19혁명의 책임을 축소하거나 오히려 그를 두둔하는 태도를 보였다.

신채호가 당시 “나라를 찾기도 전에 팔아먹으려 했다”라고 강하게 비판한 위임통치청원서 문제는 단순하게 사실을 전달하는 수준에 그쳤다. 방송은 “‘장차 한국의 독립을 보장하는 조건하에 한국을 국제연맹의 위임통치를 원한다’는 위임통치청원서를 윌슨 대통령에게 보냈다”고 전한 뒤 주진오 상명대 교수의 인터뷰를 실었다.

“구미열강이 통치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나. 제국주의 열강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주  교수는 평가했지만 임시정부 내에서 위임통치안이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대통령 참칭사건’도 마찬가지다. “집정관 총재를 영어로 번역하면 프레지던트”라는 이승만의 해명으로 단순한 해석상 문제로 치부했다.

하와이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이승만이 공동 의무금을 착복한 문제 등으로 분쟁과 분열을 일으킨 부분은 아예 빠졌다.

<2부 건국과 분단>에서는 친일파 청산이 무산된 이유를 ‘인력 부족’으로 돌렸다. 당시 친일 잔재를 청산을 요구하는 국민적 열망은 컸지만 결국 후대에 민족의 숙원 과제로 남겨졌다.

방송은 “친일파 문제는 조용히 처리해야 할 문제”라는 이승만의 담화 내용에 “각 부처가 사람이 없어 엉망”이라는 이승만의 불만이 이어졌다. 친일파 처벌이 실패로 돌아간 원인이 ‘인력 부족’때문이란 것이다. 이어 “취약한 정치 기반을 위해 친일 관료를 등용했다”는 해석은 뒤에 배치됐다. 

또 3·15부정선거와 이로 인한 4·19혁명에 대해서도 이승만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자유당 강경파의 공작”인 3·15부정선거를 “자유당 각료들로부터 정보가 차단돼 정국을 파악하지 못했다”며 이승만과의 직접적인 연관을 애써 피했다. 여기에 교수시국선언이 나온 다음날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병원을 찾아 부상자를 위로했다”며 이승만이 눈물을 흘리는 화면을 내보내기까지 했다.

이승만 집권시기 자행된 양민학살에 대해서도 비슷한 태도를 취했다. 거창양민학살은 “훈련되지 않은 병력이 저지른 사건”으로 그렸다. 이승만이 주장한 단독선거·단독정부에 반발해 봉기를 일으켰다가 주민 2만여 명이 희생당한 4·3사건은 방송에서 아예 누락됐다.

■뛰어난 정치인으로 묘사 = 방송은 동시에 이승만을 민족지도자로서 위기국면마다 돌파구를 마련한 협상가이자 뛰어난 정략가로 그렸다. ‘민족의 영웅’, ‘민족 최고의 지도자’, ‘뛰어난 정치인’이라는 수식어가 인터뷰와 내레이션을 통해 빈번하게 등장했다.

친미주의자로 알려진 이승만이 때로는 미국와 외교 주도권을 놓고 대립하고 뼈있는 발언도 서슴지 않던 지도자였다는 것이다. “기선 제압을 통해 7억달러의 경제원조를 받아내다”는 식으로 그의 결단과 업적을 치켜세웠다. 

이와 함께 미국 대통령에게 인정받는 민족의 지도자 모습도 부각됐다. 방송은 맥아더와의 인연으로  “맥아더 전용기를 타고 왔다”거나 “대대적인 환영행사가 마련됐다”고 그의 대내외 위상을 강조했다.    

이승만과 직접적인 연관을 피한 실책과 달리 ‘반공포로 석방’에 대해선 “이승만이 직접 지시했다”고 명시했다. 방송은 이를 두고 ‘이승만의 승부수’,‘이승만의 용단이었다’며 “이를 계기로 제네바 조치를 제고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또 원자력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과학자를 육성한 점과 의무교육 실시 등 이승만의 업적으로 꼽을 만한 측면은 빠뜨리지 않고 다뤘다. 

이승만을 중심에 놓고 해방 이후 정치상황을 묘사하면서 여운형, 김구 등의 독립운동가는 주변인으로 밀려났다. 여운형 암살 사건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고 김구 암살은 2부 끝에 자막으로 처리했다. 일제로부터 해방보다는 건국에 방점을 찍은 결과였다.

■재조명 이유 증명 못했다 =<초대대통령 이승만>은 기존의 이승만 담론을 확장할만한 근거나 자료를 제시하지 못했다. 이미 학계에서 평가가 끝난 인물을 왜 다시 조명하게 됐는지 증명하는 데도 실패했다.

<초대대통령 이승만>를 통해 새롭게 알려진 사실은 이승만이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를 만나 고종이 보낸 선물인 나전칠기를 전달했다는 정도다. KBS는 이번 방송을 통해 “민영환과 한규설이 미국에 보낸 이승만이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를 만나 대한제국의 독립보전을 요청했던 사실이 문서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지난달 28일 1부가 나가기 직전에 KBS <뉴스 9>에서 “부상자들이 입원한 병원을 방문해 울먹였던 것이 화면을 통해 드러났다”고 내보낼 정도로 <초대대통령 이승만>의 성과는 부실했다.

<초대대통령 이승만>은 오히려 정당이름을 잘못 표현하는 등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는 데 허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제작진은 발췌개헌안을 내놓기 직전에 이승만 지지했던 한국민주당을 한국국민당으로 잘못 표현했다는 지적을 받고 방송이 나간 이후 잘못을 시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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