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탈성장’은 금단의 영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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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들어 ‘4대강 사업’이 추진되면서 ‘탈토건’에 대한 공감대는 높아진 듯하다. 그래서 최근의 선거 때마다 ‘탈토건’이 이슈가 되고 있다. 그러나 과연 ‘탈토건’이라는 문제의식으로 토건사업 중독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탈토건’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탈성장’에 관한 이야기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성장중독증에서 벗어나지 않은 상황에서는 토건중독증으로부터도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토건사업을 벌이는 주된 논리가 바로 경제성장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매우 조심스럽게 얘기되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제는 ‘탈토건’을 넘어서서 ‘탈성장’을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탈성장’을 얘기한다고 해서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아주 단순하게는 경제성장률을 모든 정책의 척도로 삼는 ‘탈GDP'부터 시작할 수 있다.

GDP(국내총생산)를 경제의 척도로 삼는 이상, GDP를 몇 % 올리기 위해 토목사업을 벌이고 의료를 시장화하고 난개발을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역내 총생산(GRDP)를 지역 발전의 척도로 삼는 상황에서는 성장률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기업에 부당한 특혜를 주면서까지 외부 자본을 유치하는 것을 막기는 어렵다. 사실 GDP를 계산할 때에는 환경을 파괴한 다음에 복구하는 행위, 범죄가 증가해 교도소를 더 짓고 유지하는 행위까지도 경제활동으로 포함된다. 그래서 GDP의 증가가 삶의 질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우리나라 상황이 이런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5월에 방정환 재단에서 발표한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행복지수는 OECD 최저 수준이어서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청소년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따져보면, 성장과 물질만 중시하는 사회라는 것에 근본 원인이 있다. 조사 결과를 보면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횟수도 OECD국가 중에 가장 적었다. 외로움을 느끼는 비율도 일본 다음으로 높았다.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가족들이 같이 밥상에 앉는 횟수가 적고 가족 간에 대화를 나눌 시간도 부족하니청소년들이 행복하지 못한 것도 당연하다.

그래서 행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경제가 더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일상을 찾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GDP를 더 이상 경제의 척도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그렇게 급진적이지 않다. 경제활동의 궁극적인 목적이 행복에 있다면, 이제는 GDP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물질적인 풍요만이 행복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여전히 ‘성장만이 살 길’ 인 것처럼 얘기한다. 

지금은 민주당이 ‘탈토건’을 얘기하지만, 민주당은 새만금 사업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새만금에 비해 4대강이 훨씬 더 파괴적인 사업이긴 하지만, 새만금도 토목사업에 의존하려다 예산만 낭비하고 뭇 생명들을 죽인 사업이기는 마찬가지다. 본질이 ‘토목’을 통한 경제 성장 논리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탈토건’을 얘기하는 정치인들이 핵발전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도 ‘탈토건’ 논리의 한계를 보여준다. 핵발전소를 짓는 것 자체가 거대한 토목사업이고, 몇몇 재벌 기업들이 발전소 공사를 맡고 있다. 핵발전소를 짓는 것이나 4대강 사업을 벌이는 것이나 자연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이고 지속가능하지 않은 행위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 하승수 정보공개센터 소장

 

그렇지만 ‘탈핵’을 얘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들에게 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 때문일 것이다. ‘탈성장’도 마찬가지다. 성장 중독증에서 벗어나자는 것이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님을 잘 알면서도 여전히 몇 %의 경제 성장을 내세우는 이유는 뻔하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기는 불가능하다. 이제는 ‘탈 성장’을 얘기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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