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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운의 무한맵] ‘기자’ 주진우는 언론계의 ‘똘복이’

주진우는 ‘정통 시사주간지’ <시사IN> 사회팀장이다. 2002년 <시사저널>에 입사했고, 그 전에는 <일요신문>에서 일했다. 2006년 <시사저널>의 편집권 독립을 위해 동료기자들과 길거리로 나섰고, 2007년 <시사IN> 창간 멤버로 다시 펜을 잡았다. 그는 본인의 트위터 소개란에 자신을 “수줍고 철없는 기자. 권력형 비리 전공. 부전공은 권력기관(삼성 포함), 종교, 조폭 그리고 축구”라고 소개했다.

주진우는 MBC 창사 50주년 특별기획 <타임-‘간첩’>편에서 영화감독 류승완과 함께 간첩을 잡기 위해 ‘열연’을 펼쳤다. 기자 특유의 ‘무모함’으로 시청자의 뇌리에 남았던 그는 이후 친분이 있던 김어준의 부탁으로 딴지라디오 <나는 꼼수다>에 합류했다. <김어준의 뉴욕타임스> 재탕 느낌이 강했던 <나는 꼼수다> 콘텐츠는 주진우가 합류한 8회 방송 이후부터 인기를 끌며 9회에서 아이튠즈 집계 한국 프로그램 전체 1위를 기록했다.

▲ 딴지라디오 '나는 꼼수다' 멤버들.
<나는 꼼수다>의 성공은 ‘기자’ 주진우의 성역 없는 비판에서 비롯됐다. 주진우는 반(反)한나라당 차원의 비판이나 정치적 셈법에 상관없이 한국사회 금기의 상징인 삼성과 순복음교회, 현직 대통령의 치부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자본, 종교, 정치권력이란 무소불위의 힘 앞에서 기자는 끈질긴 취재와 팩트로 맞섰다. 광장이 막히고 입을 열 수 없는 현실에서 ‘촛불’ 이후 패배감과 무력감을 겪던 시민들은 ‘닥치고 취재-ing’ 주진우의 발견에 환호했다.

그의 가장 큰 매력은 기자들 대부분이 알아서 성역과 금기를 관리하는 직장인(광고업자 또는 홍보 관계자)으로 전락한 현실에서 홀로 살아남은 ‘생존자’라는 데 있다. 이유가 뭘까. 그는 2009년 7월 7일 <PD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힘 있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결국 ‘비판적인 기사를 쓰지 말고 잘 지내보자’ 그런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럴 순 없잖아요. 가진 게 별로 없으니 두려운 것도 없습니다.” 잃을 게 없는 기자의 펜은 ‘조선제일검’ 무휼의 검보다 날카로웠다.

그는 에리카 김, 김용철 변호사 등 한국사회 폭풍의 눈이었던 이들을 단독 취재했다. 최근에는 ‘MB 내곡동 사저 의혹’을 특종 보도했다. 동료기자 고재열의 표현을 빌리자면 주진우는 “삼성과도 바꿀 수 없는 기자”다. 영화 속 기자처럼 취재원 밀착형 스타일로 익히 알려져 있는 그는 소송을 제일 많이 당하는 기자로도 유명하다. 자사 이익을 위해 도청을 했다는 소문이 파다한 어느 방송사 기자가 버젓이 기자생활을 하고 있는 현실에 비춰보면, 국민들의 눈에 주진우의 존재는 반갑기만 하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의 ‘똘복이’가 아비의 복수를 위해 한을 품고 무림고수가 되었다면, 주진우는 기자로서 언론의 자유, 성역 없는 비판이란 ‘상식’을 지키고자 ‘언론 무림’ 속의 고수가 됐다. 이런 주진우를 있게 만든 8할은 그가 자유롭게 기사를 쓸 수 있는 지면을 제공한 <시사저널>과 <시사IN> 편집국에 있다. <시사IN>의 탄생은 2006년 6월 16일 삼성 이학수 부회장 관련 기사에 대한 금창태 <시사저널> 사장의 일방 삭제 지시에서 비롯됐다. 당시 <시사저널> 기자들은 ‘자본으로부터의 언론 독립’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약 일 년간의 파업 기간 동안 주진우는 기사를 쓰지 못하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 <시사IN> 주진우 기자. ⓒ시사IN
주진우는 2007년 <시사저널>을 떠나며 가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회사에서도 삼성에 대해서 가장 비판적인 기사를 쓰는 기자 중 한명이었죠. 현업시절 삼성에 관한 기사를 쓸 때면 경영진이 저를 불러 이것저것 지적하고 때론 회유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의 지적을 귀담아 듣지 않았고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기자로서 가지는 양심의 선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악마기자’의 지지치 않는 열정은 ‘언론인의 양심’이라는 기본가치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시민의 손으로 탄생한 <시사IN>에서 주진우는 다시 ‘악마기자’가 됐다. 그는 올해 초 <시사IN> 기자의 개인칼럼 ‘기자의 프리스타일’에서 고발기자의 고충을 밝혔다. “몇 년 전 조용기 목사를 비판했더니 신도들이 몰려와 ‘주 기자를 죽이자!’라고 외치더군요. 이름 따라 간다는 말이 있죠? 그래서인지 ‘죽이는’ 기사만 씁니다. 상대방에게 욕을 먹거나 협박당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조폭들이 쓰는 ‘포를 뜬다’느니 ‘파묻겠다’느니 하는 말도 익숙합니다.” 기자는 쉽게 말했지만, 이런 상황이 본인과 가족들에게 얼마나 정신적 어려움을 주는 지는 상상하기도 쉽지 않다.

그는 또 항상 소송을 염두하고 기사를 써야 한다. 소송은 언론인에게 가장 고통스럽고 지난한 일정이다. 그는 또 다른 ‘기자의 프리스타일’에서 이렇게 적었다. “…조사실에서 저는 제일 취재 못하고 기사 못 쓰는 기자가 되어 있습니다. 소송에서 99%를 이기고 1%를 지더라도 큰일입니다. 배상액 1000만원, 2000만원은 <시사IN>같이 작은 매체에게는 큰 부담입니다.” 이런 그에게 시민들은 <시사IN> 정기구독 신청으로 힘을 보태고 있다. 매체파워를 만드는 건 사주나 광고주가 아니라, 기자의 취재력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돈을 물어주고서라도 기사를 쓰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 떠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은데 진짜 ‘죽이는’ 기사를 쓸 욕심에 오늘도 이렇게…. 저, 철이 들려면 아직 멀었나 봅니다.” 철들지 않는 ‘똘복이 기자’ 주진우의 손은 거칠지만 따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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