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따져보기] 김병만의 리얼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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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따져보기] 김병만의 리얼리티
  • 위근우 <10 아시아> 기자
  • 승인 2011.11.07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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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 ⓒSBS
SBS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 ⓒSBS

“속 얘기를 자꾸 끄집어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를 요청하는 SBS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이하 <정글의 법칙>) 제작진들에게 김병만은 지친 표정으로 말했다. 김병만은 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치는 극한 상황에서 힘든 마음, 동료에 대한 불만, 환경에 대한 불안감 등 마음속에 품은 모든 것을 얼굴에 드러내면 결코 오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또한 김병만은 모른다. 어차피 제작진들이, 프로그램이 원하는 것은 속마음처럼 보이는 무엇이지, 진짜 속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또한 제작진도 모른다. 그 어떤 인터뷰로도 증명할 수 없는 속마음을 방금 카메라에 담았다는 것을. 그래서 김병만이어야 한다.

▲ SBS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 ⓒSBS

물고기를 잡아 어죽을 끓이고, 쉴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하며, 돌멩이로 뱀을 잡아 끼니를 마련하는 ‘달인’으로서의 능력 때문만은 아니다. 능수능란한 MC가 아니라는 점, 그래서 방송에 필요한 것을 뽑아내기보다는 생존에 급급한 김병만의 태도가 <정글의 법칙>의 리얼리티를 확보하는 지점이다.

사실 <정글의 법칙>에 김병만을 프론트맨으로 세운 것은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지만, 메인 MC로서 제대로 검증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는 모험이었다. 실제로 첫 회, 악어섬에서 멤버들을 이끌어야 했던 그에겐 강호동처럼 제작진까지 휘어잡는 카리스마나, 유재석 같은 차분한 분쟁조정 능력은 없어 보였다. 그들을 비롯한 전문 MC들은 방송의 전체적 그림을 그리며 리얼 안에서 버라이어티를 찾을 줄 안다.

‘입수’라고 하는 작위적 상황을 여행과 게임의 전체적 맥락 안에서 물 흐르듯 위치시키던 KBS <해피선데이> ‘1박 2일’의 강호동을 떠올려 보라. 하지만 김병만은 당장 먹을 게 급한 무인도에서 생존을 위해 맥가이버가 될 뿐,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가장 필요한 멤버들과의 서사를 만들기보단 ‘달인’의 원맨쇼를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건, ‘원맨’이 아니라 ‘쇼’다.

 

▲ SBS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 ⓒSBS

김병만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KBS <개그콘서트>의 코너 ‘달인’은 리얼 안에 재미를 담아내는 게 아닌, 리얼 자체가 재미가 되는 쇼다. 오직 그이기에 가능한 극한의 도전들은 웃음을 동반하는 짧은 개그 코너지만, 콩트가 아니다. 경탄과 웃음, 그리고 안쓰러움이 동반된 관객과 시청자의 반응 안에서 찰리 채플린을 연상시키는 ‘달인’과 ‘달인’ 코너를 위해 땀 흘리는 김병만 사이의 간극은 지워진다.

다시 말해 그가 다른 도구 없이 사다리를 이용해 움직이는 묘기를 부리는 모습은 단순히 무대 위 서커스가 아니라 김병만이라는 노력하는 희극인이 재미를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그 진심을 증명하는 일종의 리얼리티 쇼가 된다. <정글의 법칙>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여기서 김병만은 뛰어난 적응 능력을 보여준다. 이것은 프로그램에 꼭 필요한 미덕이지만 그 자체로는 방송에 필요한 서사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김병만이다. 자신의 행동 하나 하나를 도전기로 만들어내는 ‘달인’ 캐릭터를 통해 <정글의 법칙>은 무대를 야외로 옮긴 ‘달인’ 번외편이 되어 리얼인 동시에 쇼가 된다.

방송을 신경 쓰지 않고 생존을 궁리하는 ‘달인’의 모습이 동시에 방송에 최선을 다하는 김병만이 되는 역설. 하여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그 태도가 만들어낸 리얼리티는 동시에 이 프로그램의 가장 흥미롭고 재밌는 장면이다. 김병만이 모르고, 제작진이 몰라도, 시청자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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