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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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글로벌]프랑스= 표광민 통신원
  • 프랑스= 표광민 통신원
  • 승인 2011.11.07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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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표광민 통신원/프랑스 고등교육원(EPHE) 제 5분과 정치철학 박사과정
프랑스의 정치가인 스테판 에셀이 쓴 ‘분노하라’ 국내 번역본 표지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30여년 전 예언을 했다. “정부가 시장을 위해 일하리라.” 정부가 경제를 챙긴다니 좋은 것 아닌가? (답은 우리의 ‘경제 대통령’이 주시리라.)

시장을 개방하고 규제를 풀면 살기가 좋아진다는 것은 하나의 신화이다. 물론 이 신화를 잘 믿고 따르면 갖고 있는 주식이 오르고, 언젠가 다시 5천원짜리 치킨을 살 수 있을 것이며,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난데없는 작금의 금융위기에서 우리를 구하소서.)

▲ 프랑스의 정치가인 스테판 에셀이 쓴 ‘분노하라’ 국내 번역본 표지
신화를 거부한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지도 않는다. 아무리 <나는 꼼수다>를 들어도 내 주식은 오르지 않고, 우리 동네 치킨은 비싸고, 나는 여전히 비정규직이거나 알바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좋은 스펙을 쌓거나, 의대에 가거나 다시 태어나는 일 등등이다.

물론,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여기서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불평등하고 부패한 사회를 포맷해 버리고 좀 더 공평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존 사회를 없앨까?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메시아가 와서 리셋해 줄 것이라는 주장을 하다 교수임용 심사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미련을 못 버린 현대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메시아가 오늘날 사회 불만 세력의 폭동에서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는, 그래서 기존 사회의 해체가 가능하다는 불경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글쎄, 계란으로 바위를 쳐서 바위가 깨진다는 얘기 아닐까? (그게 가능하다면… 영혼이라도 팔겠어.)

하지만, 세상을 바꾸자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 사회와 국가는 사람이 만든 제도이지, 한없이 단단한 바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닫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한 권의 책이 사람들의 이런 마음을 대변했다. 정치가이자 작가인 스테판 에셀이 지난해 발표한 이 짧은 에세이의 제목은 ‘분노하라’ 이다. 나치 수용소 경험, 레지스탕스 활동과 인권운동까지 산전수전 다 겪은 94세의 이 노인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자본주의의 폐해에 맞서 “분노하라”고 요구한다.

물론 사람들이 책만 읽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99%인 우리가 월스트리트와 세상을 점령해 버리자고 나섰다. 앞장서서 지구를 지키고 악당들을 물리치는 것은 항상 미국인들이지만, 이번에는 유럽이 빨랐다. 5월에 이미 “진정한 민주주의”를 달라며 스페인 시민들이 먼저 들고 일어선 후 벨기에, 프랑스, 그리스 등지로 시위가 번져가고 있다.

▲ 프랑스= 표광민 통신원/프랑스 고등교육원(EPHE) 제 5분과 정치철학 박사과정

민주주의와 빈부격차 해소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아랍의 봄에서 시작해 스페인을 거쳐 유럽으로 번졌고, 한 편에서 월스트리트를 메웠으며,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서울시장을 바꿨다. 우리는 여전히 계란같이 보잘 것 없을지 몰라도 사실 상대는 바위가 아니라, 그냥 혼자 트위터를 하며 노는 아줌마였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 3일과 4일, 프랑스에서는 G20 정상회담에 맞춰 시위대가 출동했다. 이들은 “금융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시위가 인형극, 피에로 분장, 가면극 등으로 나타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세상이 바뀌면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창조적인 예술가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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