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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이 역사다”

[인터뷰] EBS ‘역사채널e’ 연출 맡은 문동현 PD 방연주 기자l승인2011.11.09 11: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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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화면 속 카드가 쏟아져 내린다. 일제강점기 죄수들의 기록카드다.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만세를 부른 식당 주인은 소요죄로, 친구들과 독서회를 만든 여학생은 치안유지법 위반이라는 죄목을 얻었다. 이어 잊혀진 6264명의 얼굴이 한 명씩 클로즈업된다. 낡은 사진 속 그들의 가슴에 새겨진 수인번호는 무표정한 얼굴보다 더 슬프다.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6264명. 그들도 요동치는 역사 속 독립열사였다. (<역사채널e> ‘6264’편)

EBS <지식채널e>의 역사버전인 <역사채널e>가 지난달 7일 첫 선을 보였다. ‘5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역사채널e>. 지난 4일 오전 서울 도곡동 EBS 본사 내 카페에서 연출을 맡은 문동현 PD를 만났다.

문 PD는 1994년 EBS에 입사해 올해로 17년 차를 맞이했다. 주로 다큐를 제작해온 문 PD는 <개미>, <바퀴> 등으로 작품성을 인정 받아왔다. 이번에 문 PD가 맡은 <역사채널e>는 국사편찬위원회와 공동 제작하는 프로그램이다.

문 PD는 “우리나라에서 국사교육이 부족하다는데 양측의 공통적 인식에 따라 기획됐다”며 “무게감이 큰 다큐보다 클립 콘텐츠형으로 방향을 잡았고 <지식채널e>의 검증된 틀을 가져왔다”고 밝혔다.  

   
▲ 문동현 EBS PD ⓒPD저널

‘역사’는 방대하다. 역사물은 자칫 거대 담론에 치우쳐 시청자들의 생각을 마비시킨다. 또 미시사적으로 파고들다보면 역사의 숲을 바라보는 시청자의 눈을 흐리게 만든다. 이 때문에 제작진은 늘 소재 선정에 고심한다. 같은 소재라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와 역사적인 교훈을 끌어낼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내세우고 있다.

“무엇보다 살아있는 역사가 재미있죠. 자꾸 유물이나 인물에만 집착하면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내기가 힘들어요. 시청자들의 역사적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할 수 소재들을 발굴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어요.”

지금까지 다룬 소재는 조선왕조실록, 독립열사, 조선통신사, 과거시험, 임금의 수라상 등이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시대별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거나 제작진의 자체 발굴로 소재를 정하고 있다. 문 PD는 “학계는 사료 자체에 비중을 둔다면 제작진은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사료에 근거한 메시지 전달하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의 시청자가 과거의 역사를 공감할 수 있도록 하고, 프로그램 말미에는 해당 편에 담긴 역사정신을 여운으로 남기는데 방점을 찍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소재가 다소 조선시대에 머무는 게 아니냐는 물음에 문 PD는 “비교적 사료가 많은 조선시대에 치우친 게 사실”이라며 “삼국시대만 거슬러가도 학계에서는 한정적인 사료 내에서 메시지를 끌어내는 시도에 대해 조심스러워한다. 앞으로 시대별로 차근차근 소재들을 확장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제작진은 문PD, 조연출, 그리고 작가까지 3명이다. 소규모로 모인지라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다.

“첫 방영분에 나온 서예는 제가 쓴 거예요. 어릴 적 배운 게 이럴 때 쓰일 줄은 몰랐죠. 또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다룬 편에서는 커닝 방법 중 콧구멍에 종이를 숨긴 장면을 찍기 위해 직접 분장해 내보내기도 했죠. 스태프끼리 서로 찍어주며 웃어요.”(웃음)

 

   
▲ EBS <역사채널e> ‘6264’편 중 일부 ⓒEBS

이처럼 문 PD는 기존 사료를 새로운 해석으로 풀어내는 것뿐 아니라 영상으로 녹여내는데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시청자들에게 지식이나 정보전달을 넘어서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방법이다.

“역사물은 사료가 제한적이다보니 재연을 많이 하잖아요. 프롤로그에 재연을 깔고, 자료화면 가고, 인터뷰 가는 형식이요. 새로운 게 없죠.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듯 영상도 어떻게 표현하느냐도 고민하게 되더라구요.”

<역사채널e>는 <지식채널e>의 간결한 문구와 감각적인 영상 구성처럼 역사적 사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데 공들이고 있다.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기보다 이미지와 느낌을 전달하는 쪽으로 맞춘 것이다.

앞서 언급한 ‘6264’편에서도 잊혀진 죄수들은 구석에 버려진 수 많은 카드처럼 취급되어온 느낌으로 영상을 표현했다. 이러한 시도는 <역사채널e>의 시작 화면에서도 드러난다. 바다 속에 낡은 중고 TV가 빠지는 장면은 ‘움직이는 시간’(바다)과 ‘역사물’(중고 TV)을 뜻한다.

요즘 문 PD는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 속에 기록된 역사를 되짚어보는 소재를 찾는 중이다. 일기나 손 편지부터 최근 트위터까지 기록들이 역사가 된다는 주제로 사례를 찾고 있는 것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상황을 쓴 여고생 일기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됐잖아요. 한국판 ‘안네의 일기’죠. 역사참여는 집회라는 행위 외에도 개인적으로 기록하는 것 자체가 역사인 것 같아요. 위인을 통해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역사고, 이 순간이 곧 역사가 아닐까요.”


방연주 기자  nalava@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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