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프로그램을 만드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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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선의 음악다방]

라디오와 음악에 대해서 원고 요청을 받으니, 문득 카펜터스(Carpenters)의 노래 ‘예스터데이 원스 모어’(Yesterday Once More)의 가사가 생각난다. When I Was Young I’d Listen To The Radio Waiting For My Favorite Songs...(내가 어렸을 때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길 기다리면서 라디오를 듣곤 했었지...)

1970~8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정말 이 가사내용처럼 라디오를 들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기다렸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워크맨이 나와서 음악의 청취 패턴을 바꿔놓기는 했지만,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은 신곡과의 첫 만남이 이뤄지는 곳이었고, 모든 장르의 음악과 그를 만들어내는 아티스트 소개가 응집된 정보의 보고였다.

하지만 요즘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은 만드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 지상파 3대 방송사에서 음악 그 자체가 위주인 프로그램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토크의 사이사이에 숨 고르는 시간을 메워주는 게 음악인 경우가 많다.

예전처럼 팝의 명곡이 어떻게 탄생하게 됐으며, 가사는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아티스트는 그 노래를 취입하면서 어떤 일을 겪었고, 차트에 올라서는 어떤 기록을 세웠는지, 음악 프로그램에서 그런 얘기를 좀처럼 들을 수 없다. 듣고 싶은 노래와 사연을 적은 엽서를 보내놓고 일주일쯤 진득하게 기다리는 청취자도 없다.

디지털 음원이라는 형태로 도처에 나돌아 다니는 음악을 간단하게 잡아 들으면 되니 바야흐로 레퍼토리 과잉, 플랫폼 홍수의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그럼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은 이제 종말을 고해야 하는 것인가? 위기의 음악 프로그램에 그 대책은 뭔가?

나는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이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술품의 예를 들어보자. 화가의 작품이 멋지게 보이는 것은 평론가의 해설이 큰 역할을 한다. 명화가 태어나기까지 그 배경에는 반드시 스토리가 있게 마련인데, 그것은 작품 그 자체의 스토리일 뿐 아니라, 화가의 성장환경, 화풍의 탄생 등등 숨어있는 흥미진진한 얘기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그 안에 숨 쉬는 스토리가 무궁무진하다. 그걸 소개하는 것이 바로 음악 프로그램의 역할이다. 언제부턴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라디오를 떠나고 있다. 왜냐? 그들은 예술작품을 감상하듯 명곡을 들으며 스토리를 접하고 싶어 하지만, 어디에서도 해설을 해 주는 곳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저 넘쳐나는 것은 신변잡기, 경박한 우스갯소리 뿐. 그러려면 라디오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스마트폰에 저장된 수 천 수 만의 음원을 불러내서 들으면 그만이다.

예전에는 음악을 아는 사람이 DJ를 했다. 지금은 TV에서 얼굴이 알려진 인물을 앞 다퉈 기용한다. 인기가 떨어지면 바로 용도폐기다. 라디오는 속성상 몇 년을 두고 전문성을 키워야 비로소 인지도가 올라가는데, 바로 쓰고 청취율이 오르지 않으면 교체하는 세태 속에서 전문 음악DJ의 탄생은 요원하다.

심지어는 시간이 없다고 아나운스멘트만 녹음하고 음악은 나중에 삽입해서, 2시간 프로그램을 한 30~40분에 끝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런 풍토에서 소개하는 음악이 과연 감동으로 전해지겠는가? CD를 빌려 트는 제작진도 별로 볼 수 없다.

▲ 조정선 MBC 라디오본부 PD
하지만 CD안에는 얼마나 많은 소중한 음악정보가 있는가! 작사, 작곡자 이름과 주옥같은 가사와 앨범에 참여한 세션 연주자와 녹음한 스튜디오와 날짜 등등 이런 크레디트를 보면 음악이 정말 소중한 예술작품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그걸 우리는 음악 프로그램에서 전달해 줘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음악에 목말라하는 수많은 팬들이 있다. 잇달아 열리는 국내외 가수의 공연과 또 장기롱런 되는 뮤지컬을 통해서 그것을 알 수 있지 않은가.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이 좋은 음악과 풍부한 음악정보라는 기본에 충실하다면, 라디오를 떠났던 사람들이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기본에 충실한 TV 쇼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서 그걸 보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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