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되고 싶다, 되었다, 되고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얼마 전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제목은 ‘나형아, 잘 지내니?’. 짧고 직설적인 이 한 마디는 길고 번잡한 광고 문구 사이에서 몹시 도드라져 보였다. 궁금하고 반가운 마음과 경계하는 마음이 동시에 생긴다. 오랫동안 연락 없었던 사람이 보낸 게 분명하지만, 오랜만에 왔다고 해서 꼭 반가운 연락이란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 메일은 고등학교 2,3학년을 같이 지낸 친구로부터 온, 뜻밖으로 기쁜 메일이었다. 덕분에 먼 기억으로 워프를 했다. 당시 그 아이는 의대 지망생이었고 나는 조경학과에 가고자 했는데, 고등학생다운 초조함과 갈망으로, 우리의 꿈이 꼭 이루어지길 서로 격려하곤 했었다. 운 좋게도 둘 다 원하는 과에 진학했고 대학에 가고 난 뒤 몇 번 만나기도 했지만, 각자의 삶이 달라지는 동안 어느 틈에 전화번호도 바뀌고 연락도 끊겨버렸다.

그녀는, 연락 못한 지 몇 년이 흘렀는지 까마득하다고 쓰고,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결혼은 했는지 아이는 있는지 궁금하다고 썼다. 고등학생이었던 소녀들이 이제,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아니,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없으면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지는 나이로 건너 뛰어와 있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나야 그대로지 뭐. 여전히 ○○의료원에 있고, 정신과 전문의가 돼서…” 어머나, 이 아이. 정신과 전문의가 ‘되었’단다. 나는 답장에 이렇게 썼다. “나는 라디오PD가 됐어.”

그리고 곧 깨달았다. 이 말이 얼마나 열없고 창피한 말인가 하는 것을. 서른셋의 직장인에게, 무언가가 ‘되었다’는 말은, 쓸 데도 없고 쓸 수도 없는 사어(死語)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우리 모두에게는 무언가가 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과학자가 되고 싶고, 화가가 되고 싶고,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 어른들은 하나같이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묻기를 좋아했는데, 이제는 누구도 우리에게 “그래, 너는 커서 뭐가 됐니?”라고 물어주지 않는다.

아니, 물어주지 않아서 고맙다. “우리 애가 명문대 졸업하고 ○○전자에 취직했잖아요.” “아이고, 대단하네.” 이런 대화를 들어야한다면 열이면 열, 심장이 쪼그라들 것이다. 대단하긴. 매일 부장 눈치나 살피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처지일 텐데. 같은 맥락에서, 라디오PD 된 게 뭐 대수라고. 얼마 전 갓 입봉해서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고. 내게 좋은 PD의 자질이 없는 건 아닌지, 매일 의심하느라 잠이 안 올 지경인데. ‘○○가 되고 싶다’일 때가 좋은 거지, ‘○○가 되었다’로 바뀌는 순간, 현실이라는 시궁창에 떨어져 초라해질 일만 남은 게 아닌가.

 

▲ 김나형 MBC 라디오PD

 

이렇게 생각하니 꽤나 쓸쓸해져, 조금 고쳐 생각하기로 한다. 이상에서 현실로 떨어져 자괴감과 괴리, 비루함과 초라함을 느끼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진짜로 무언가가 되기 시작하는 건 아닐까. 어쩌면 나는, 무언가가 ‘된다’는 말을 여태 잘못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임용고시에 붙는다고 선생님이 ‘된’ 것일까? 좋은 선생님이 될지 나쁜 선생님이 될지, 능력 있는 선생님이 될지 무능력한 선생님이 될지는 그때부터 비로소 시작되는 게 아닌가. 수진아, 그렇다면 말이야, 이렇게 고쳐 써야겠네. “나는 라디오PD가 됐어.” 두 줄 좍좍. 그리고 이렇게 고친다. “나는 라디오PD가 되.고.있.어.” 그래. 마음에 든다 이제.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