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 재촉에 지상파 ‘철거민’ 취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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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 ‘황금주파수’ 700MHz 대역 갈등

방송사들이 ‘황금주파수’ 700MHz 대역 용도 지정에 속도를 내는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때문에 속을 끓이고 있다. 현 지상파 TV 아날로그 주파수 대역인 700MHz을 둘러싸고 신중론을 펴는 방송업계와 서둘러 용도를 확정해야 한다는 통신업계가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방통위가 “충분히 논의했다”며 용도 확정시기를 앞당기고 있는 모습이다.

통신업계는 2012년 말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으로 새롭게 쓰임을 지정해야 하는 700MHz 대역에 2008년 이후부터 줄곧 눈독을 들이고 있다. 통신업계는 데이터 트래픽 폭증을 해결할 유일한 대책으로 추가 주파수 확보를 꼽고 있다. 방송사들은 “보편적 서비스로 이용해온 주파수를 빼앗기면 방송의 미래까지 사라지게 된다”라고 반발하고 있다.

■“700MHz 여유주파수 아니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최근 700MHz 용도 지정 움직임을 두고 “요즘 같아선 700MHz를 회수하기 위해 디지털 전환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며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이 완료되기 전에 디지털TV중계소의 디지털 전환을 서두르는 걸 보면 700MHz를 빨리 빼주려는 목적 같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아날로그 방송과 디지털방송으로 쓰던 698MHz부터 806MHz까지 총 108MHz 대역을 여유대역으로 지정했다. 아날로그 이후 디지털TV 주파수 대역을 470MHz~698MHz으로 확정한 데 따른 것이다.  주파수 용도를 먼저 확정하고 여기에 맞춰 디지털을 전환을 마쳐야 하는 구조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현장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혼신 등이 발생하면서 “주파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문제로 가장 골머리를 썩고 있는 곳은 KBS다. KBS는 2012년 상반기까지 간이중계소 309개의 디지털 전환을 마쳐야 한다. 현재까지 130개 중계소의 디지털 전환을 위한 준비를 완료했다. KBS 관계자는 “디지털 전환 작업을 실제 하다 보니 인접한 주파수의 혼신이 예상보다 많고 난시청 해소의 지역 상황도 여의치 않아 더 많은 주파수가 필요하다”며 “700MHz 주파수는 여유대역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65%정도 채널이 디지털 전환에 따른 재배치 대상인데 채널이 바뀌게 되면 또 혼신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채널 재배치를 마치고 여유대역을 다시 지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을 위해서라도 채널 재배치까지 마친 다음 여유대역을 다시 지정해야 한다는 요구다.

공공재로 써온 주파수‘민영화’?=700MHz 주파수 배분 문제는 보편적 서비스와 경제적 효율성 가운데 무엇을 우선에 두느냐의 문제로 치환된다. 방송사들은 700MHz 대역의 통신용 지정은 보편적 시청권 보장을 추진하고 있는 방통위의 정책과도 배치된다는 주장이다.

SBS 한 관계자는 “통신용으로 700MHz 대역을 지정하겠다는 것은 보편적 서비스로 쓰던 주파수를 민영화 하는 것”이라는 “결국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가야 한다는 이유로 통신용으로 할당하면 요금을 내는 가입자에게만 주파수를 내주는 꼴”이라고 말했다. 통화 품질과 데이터 사용 속도가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그 부담은 소비자가 떠안게 된다는 우려다.

통신업계는 700MHz 대역의 통신용 지정을 주장하면서 지난 2007년 열린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세계전파통신회의(WRC-07)의 결과를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회의에 참석한 국가들은 700MHz 대역을 방송·통신 공동으로 지정했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관계자는 “WRC-07 결과에 따라 세계적으로 이 주파수대역을 통신산업에 이용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며 “선점효과가 큰 통신산업의 특성상 주파수 확정이 늦는 만큼 국가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도 “주파수 활용은 (주파수가) 장기간 활용되지 못하는 기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며 통신사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차세대 방송서비스 대책 마련이 먼저”=방송사들은 방통위가 통신업계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방송업계의 미래에는 눈을 감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현재 정부에서 내놓은 차세대 방송서비스에 대한 비전은 전무하다.

방통위는 2013년 4K-UHDTV 실험방송, 2017년에는 디지털케이블방송과 위성방송의 3D/UHD 실험방송을 실시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 계획에 지상파방송은 빠져있다. 이대로 700MHz 대역을 통신용으로 지정하게 되면 지상파방송의 미래는 요원하게 된다.

이에 대해 방통위 관계자는 “차세대 방송서비스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맞지만 앞으로 3D방송을 위해 제작비가 늘어나는 것을 감안하면 보편적 서비스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라며 “차세대방송을 위한 진전된 연구과 비전을 방송사들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성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매체공학과)는 “주파수 배분은 한번 결정하면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을 전제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며 “통신업계는 급하다고 재촉할 게 아니라 2G 서비스를 완료하고 그 주파수 대역을 어떻게 활용할 지, 앞으로 주파수가 얼마나 필요한지 예측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방송사도 가까운 미래에 3D,UHD 방송을 해야 하는데, 700MHz 문제는 정부가 차세대 방송서비스에 대한 로드맵을 수립한 뒤 정해도 늦지 않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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