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출발부터 잘못된 방송저널리스트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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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첫 해에 성명서를 쓸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KBS 37기 방송저널리스트 성명서 중)

최근 KBS가 내놓은 ‘37기 방송저널리스트 재배치 세부 계획’을 둘러싸고 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과 직능협회 등이 집단 반발하고 있다. 이 계획에 따르면 KBS의 지역총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37기 방송저널리스트 가운데 일부만 본사로 선발하고 나머지는 추후 순차적으로 발령을 낸다고 한다. PD, 기자의 직종조차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입사하자마자 전원을 지역으로 내려보내 놓고 이제와서 입맛에 맞는 사람만 선별적으로 본사로 뽑아올리겠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의 문제점은 방송저널리스트 제도 자체에서 비롯된다. 기자와 시사·교양·다큐 PD의 통합이라는 제도적 명분은 당초 현업 종사자들의 요구에 의해 도출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와는 정반대로 김인규 사장의 의도에 따라 일방적으로 강요된 성격이 짙다.

그는 KBS 사장이 되기 이전부터 “방송개혁 1번이 PD개혁’ 운운하면서 PD저널리즘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해왔고, 취임 이후 현장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시사투나잇〉과 〈시사360〉 등 시사프로그램을 폐지하고 〈추적60분〉을 보도본부로 이관하는 등 PD들의 비판적 역할을 거세시키려는 시도를 계속해왔기 때문이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이 사태를 바라보는 KBS 사측의 잘못된 시각이다. 인력 재배치안을 취소하라는 노조와 현장 PD·기자들의 요구에 대해 KBS측은 “인력 선발과 배치는 회사의 고유한 권한”이라며 ‘오불관언’(吾不關焉)의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이 점에 관해서는 현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으로 자리잡은 ‘내적 자유’의 개념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언론의 자유와 독립은 비단 외부 정치권력과 자본의 압력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고도로 기업화된 오늘날 언론 조직에서는 종사자들이 조직 내부의 부당한 간섭과 압력에 대해서도 자유로운 언론활동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적 자유의 개념이다. 달리 말하면 언론은 시민의 이익에 복무해야 한다는 기본 전제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언론사의 경영권은 언론 본연의 역할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인규 사장과 KBS의 경영진은 경영권 내지 인사권의 이름으로 기자와 PD를 순치시키겠다는 반언론적인 행태를 지양하고, 자유로운 언론 활동을 보장할 수 있도록 방송저널리스트 재배치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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