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갈망한다면 할리에 몸을 맡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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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사생활 ①] 바이크 라이더 송일준

시사교양 PD 송일준. 그는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수많은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했고, MBC 〈PD수첩-광우병 편〉(2008)에 대한 권력의 언론자유 탄압에 맞서 싸워왔다. 하지만 〈PD수첩〉을 통해 비춰진 모습이 ‘인간 송일준’의 전부는 아니다. 그는 일상의 스트레스로 자유가 고플 때면 가죽 재킷에 마스크를 쓴 뒤 1500cc의 ‘할리 데이비슨 스트리트 밥’에 시동을 걸고 질주하는 고독한 ‘바이크 라이더’다.

오래전부터 바이크에 대한 갈증은 있었다. 〈PD수첩〉 같은 사회성 짙은 프로그램을 맡으며 일에 쫓기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 실행에 옮기기 힘들었을 뿐이다. “50세가 되던 해(6년 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정신이 들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것, 나를 위해 즐길 수 있는 것을 찾겠다고 결심했죠.” 저지르자고 생각하니 바이크가 눈에 들어왔다. 금세 말 타듯 타는 대형 배기량의 아메리칸 스타일로 결정했다.

▲ 송일준 MBC PD는 일상의 스트레스에 자유가 고플 때면 가죽 재킷에 마스크를 쓴 뒤 1500cc ‘할리 데이비슨 스트리트 밥’에 시동을 걸고 질주하는 고독한 ‘바이크 라이더’다.

하지만 마지막 관문이 남아있었다. “지구상 모든 여자들은 남편이 바이크를 탄다고 하면 쌍수를 들고 반대하죠. 그래서 상당기간 공작이 필요했어요.”(웃음) 송일준 PD는 “할리타고 가는 거 봤는데 정말 멋있더라.” “들어보니까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대…아니 내가 사겠다는 건 아니고…”라는 식으로 아내의 심리적 저항감을 줄여놓은 뒤 중고로 혼다 쉐도우(750cc)를 샀다.

처음에는 기어체인지도 마음대로 못했다. 덩치도 크고 무거웠다. 장충동 고개를 넘어가다 바이크의 시동이 꺼진 적도 있다. 죽을 고생을 하며 바이크를 끌어야 했다. 운전 첫날 집에 들어오니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아내는 헬멧을 보더니 “샀어? 조심히 타”라고 했다. 그렇게 바이크 라이더로서의 인생이 열렸다.
제대로 라이더가 되기 위해 라이딩 스쿨에서 주말마다 하루 8시간씩 배웠고, 주기적으로 스킬을 업그레이드 했다. 바이크의 구조도 공부했다.

‘라이더’ 송일준은 주로 주말에 아는 사람 1~2명과 바이크를 즐긴다. “동호회 가입도 재밌지만 속박 당하는 게 있어요. 떼거지로 가는 게 멋있긴 한데 불편한 것도 있어요.” 특파원 시절 만나 15년째 친구인 TV아사히 기자 출신 쓰나미 겐고와는 바이크로 맺어진 우정이 탄탄하다. 둘은 매년 한국과 일본을 번갈아가며 4박 5일정도 오토바이를 몬다.

사실 베테랑이 되기까지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초보자 시절 연료가 없는 줄 모르고 타다가 천호대교에서 시동이 꺼졌어요. 할 수 없이 경찰차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바이크를 끌고 한강다리를 건너야 했죠.”
한 번은 유명산 코스 코너링에서 젊은 친구들처럼 속도를 내다가 내리막길에서 순간 뒤 브레이크를 밟고 순식간에 별이 빛난 적도 있다. 헬멧부터 전신에 보호복을 갖춰 입은 덕에 외상은 없었지만 몸이 공중에서 돌며 머리를 땅에 박아 후유증은 남았다. “(그날) 다행히 시동이 걸려 너덜너덜해진 바이크를 끌고 왔죠.”(웃음)

▲ 2007년 일본 홋카이도 투어링을 하는 송일준 PD

바이크의 위험을 상쇄하는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바이크는 자전거와 자동차의 장점을 다 갖고 있어요. 온 몸으로 자연과 교감할 수 있으면서, 원하는 목적지까지 빨리 갈 수 있죠. 교통 체증에서도 자유로워요. 네 바퀴보다는 불안하지만, 하이리스크만큼 하이퀄리티가 있죠.” 한 예로 코너링에선 코너의 각도에 맞춰 어느 정도 기울기로 물 흐르듯 빠져나갈지를 뇌가 순간적으로 계산해야 한다. “중력과 원심력을 온 몸으로 느끼는 코너링에선 바이크와 조종자가 하나 되는 짜릿함이 있어요.”

바이크는 ‘아이언 호스’(Iron horse, 철마 鐵馬)로서의 매력도 있다. “바이크는 말 타는 것과 같아요. 온 생명으로 도로의 상태와 날씨를 대면하며 속도와 코너링에서 스릴을 느끼고, 타는 자세 역시 말 잔등을 양쪽 허벅지로 조여 주듯 니그립을 잡아야 해 말 타는 것과 꼭 같죠. 말과 다른 건 여물 대신 가솔린을 주는 겁니다.”(웃음)

그런데 직업이 ‘시사교양 PD’인지라, 송일준 PD는 바이크를 통해 한국 사회를 통찰하고 있었다. 한국은 ‘라이더의 천국’ 일본과 달리 바이크를 즐기는 문화가 거의 없다. “바이크에 대한 인식이 박약하고, 한국 사회 라이더 대부분이 택배와 같은 생계족이 대부분인 탓이죠.” 취미족으로 바이크를 타는 사람들 중에선 속도만 즐기고 폼만 잡으려는 이들이 있어 인식이 안 좋다.

택배족은 자동차 전용도로라는 ‘해괴망측한’ 제도 때문에 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차별받고 있다. 일본은 바이크가 자동차에 포함되지만 한국은 고속도로에 들어오면 위험하다는 이유로 바이크의 전용도로 진입이 금지됐다. “배달족은 시내에서 뒤엉키는 길을 가야해 사고 위험이 늘어요. 자동차 전용도로를 타면 오히려 시내 운전자와 사고 위험이 줄고 시간과 기름 값도 줄 겁니다. 전용도로는 한 방향으로 가고, 사람도 신호등도 자전거도 없어 바이크 라이더에게 굉장히 안전합니다.” ‘바이크의 사회학’을 설명하는 그는 어느새 PD의 모습이었다.

그는 제대로 라이더가 되려면 “속도를 내고 싶을 때 참아야 한다”고 했다. 〈PD수첩〉에 대한 정권의 끈질긴 탄압 속에서도 3년이 넘는 시간을 인내하며 ‘광우병’편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에는 ‘라이더’로서 가졌던 인내와 절제가 한 몫을 했다. 그는 오늘도 바이크를 타면 맞은 편 라이더들과 인사를 나눈다. “반갑다, 차별받는 부족들이여!” PD 송일준과 라이더 송일준의 공통 명제는 ‘부당하게 차별받는 이들과의 연대와 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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