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방심위, 원칙대로 폐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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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적으로는 그게 맞다’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어떤 사안의 해결방법을 논의하는 중 흔히 듣는 말이다. 고집피우지 않고 굉장히 합리적 방안을 제시하는 듯 들리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본질적인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말이다. 원칙적으로 맞으면 다소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대로 하면 될 것을 이런 저런 현실적 이유를 들어 다른 방안을 찾다보면 문제가 그대로 남기 마련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어때야 하는가’를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늘 나오는 말이다. “원칙적으로는 방심위를 해체하고 자율규제로 가는 게 맞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어렵다면...”라는 식으로 위원회 구성문제 등의 개선방안을 제시한다. 방심위의 어이없는 활동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지난해 방심위의 성격과 관련한 법원의 중요한 판결이 있었다. 환경운동가인 최병성 목사가 자신의 블로그에 쓰레기 시멘트 문제의 심각성을 폭로한 글을 올렸다. 시멘트 회사들이 방심위에 이 글이 허위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며 심의 요청을 했고 방심위는 이를 명예훼손으로 결정, 삭제하라는 시정요구 결정을 내렸다. 포털 사이트는 게시물을 삭제했다. 최 목사는 이에 서울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이 소송에 대한 판결이 지난해 2월 있었다. 원고 승소 판결이었다.

소송의 쟁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문제의 블로그 글이 명예훼손에 해당되느냐였다. 물론 판결은 명예훼손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 판결은 우리가 그동안 간과해온 중요한 것을 일깨워 준다. 스스로 민간기구라고 하는 방심위가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런데도 방심위는 명예훼손이라는 이유로 포털에 많은 기사를 삭제하도록 했다. 앞으로도 그러겠다고 한다.

또 하나의 쟁점은 포털에 대한 방심위의 시정요구가 단순한 권고인가, 이행해야할 행정처분인가였다. 방심위가 행정기구인가 민간독립기구인가를 판단하는 중요한 쟁점이었다. 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방심위에 관한 여러 규정을 볼 때 방송통신위원회와 같은 행정기구라고 했다. 이 판결로 방심위가 포털에 대해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게시물 삭제를 명하기가 어렵게 됐다.

법원의 판단 전에도 방심위가 행정기구라는 지적은 여러 번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그랬고 우리나라 표현의 자유 실태를 조사한 유엔 특별보고관의 보고서가 그랬다. 방심위의 항소로 앞에서 언급한 사건의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은 방심위의 심의가 위헌이 아닌가 하는 위헌제청을 헌법재판소에 제기했다. 법원이 위헌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방심위가 행정기구이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방심위가 스스로를 애써 민간기구라고 주장하는 것도 국가의 행정기구가 미디어나 시민의 표현을 감시, 규제한다는 혐의를 피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심의’와 ‘검열’의 차이는 그 주체가 누구냐에 따른다. ‘검열’의 주체가 행정기관이나 그 뜻에 따라 움직이는 기구라면 ‘심의’의 그것은 자율적인 민간기구다. ‘검열’이 강제적으로 표현물의 유통이나 배포의 금지, 또는 일정한 제한을 가하는 것이라면 ‘심의’는 심사와 결과를 제작자가 자발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스스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의 방송, 통신의 표현물은 ‘심의’라는 이름의 ‘검열’을 받아 온 셈이다.

방송 내용에 관한 심의결정이 나올 때마다 늘 문제가 됐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프로그램 내용에 대한 공익성, 공정성 등의 판단을 행정기구가 심의가 아닌 검열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다.

▲ 남성우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더 이상 ‘방심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논의는 무의미하다. 당장 폐지해야 한다. 폐지와 자율규제를 전제로 여러 예상되는 문제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로 존속을 전제로 위원회 구성을 이렇게 해야 한다거나 정치심의를 하지 말라는 등의 방안을 찾는 것은 문제의 해결 방법이 아니다.

그러는 동안 방심위는 또 새로운 일거리를 찾는다. 그토록 우려와 반대가 큼에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앱을 전담하는 팀을 만들고 심의가 아닌 검열을 시작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지 않은가. ‘원칙적으로 맞으면’ 그 원칙을 따르는 것이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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