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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PD들, 불평등 구조 더 큰 문제…“채널 많지만 ‘하도급’ 현실 똑같아”

한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채널)에서 개국 특집으로 방영된 다큐멘터리를 두고 독립PD들과 누리꾼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아시아스페셜’ 3부작으로 방송된 <오래된 인력거>, <신의 아이들>, <잃어버린 고향> 등 세 편에 대해 일부 누리꾼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 이들은 ‘종편 부역자’라는 꼬리표를 독립PD들에게 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것일까. 이들이 택한 ‘종편채널행’은 오랜 시간 풀리지 않은 외주제작시스템 문제와 맞닿아 있다. 방송사와 제작사 간 곪아있는 불합리한 구조가 건재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이번 논란의 중심에 선 독립PD들은 국제무대에서 그들의 연출력과 작품성을 인정받은 PD들이다. <신의 아이들>을 연출한 이승준PD는 신작 <달팽이의 별>로 지난 11월 26일 국제적으로 명망 있는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IDFA)의 장편 경쟁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또 이성규 PD가 10년 동안 촬영하고, 2년 간 편집해 만든 <오래된 인력거>도 작년 IDFA의 장편 부문에 올랐다. 이외에도 2009년 박봉남 PD는 <아이언 크로우즈>로 같은 영화제 중편 부문에서 대상을 거머쥐었다. 지상파가 이루지 못한 쾌거를 3년 연속 거둔 것이다.

▲ 이성규 PD가 연출한 <오래된 인력거>

‘하도급’으로 전락한 제작사

이처럼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은 작품들을 그동안 국내 방송에 내놓지 못한 속사정은 무엇일까. 관행처럼 굳어진 방송사와 독립PD(제작사) 간 불평등한 관계가 한 몫 한다. 소위 선진 방송을 이끄는 나라들은 프로그램을 사고파는 콘텐츠 마켓이 활성화 돼있다. 독립PD들이 제작한 작품들이 시장에서 협상을 통해 거래된다. 이 과정에서 독립PD들은 ‘갑’도 ‘을’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다채널 다매체 시대를 맞았지만 외주제작시스템은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을 뒤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1990년대 외주제작 제도를 도입한 이래 ‘제자리걸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주제작사에서 기획하고 제작한 프로그램마저 ‘하도급’ 취급을 받다 보니 현장에서의 불만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한 PD는 “(방송사는) 현실적인 제작비를 주는 제대로 된 하도급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모든 권리는 영원히 ‘갑’에게 있다는 식”이라고 꼬집었다.

독립PD들이 지상파와 제작사 간의 불균형 구조 중 가장 문제로 꼽는 것은 바로 ‘저작권’ 문제다. 현재 지상파에 방송된 외주제작 프로그램의 촬영원본에 대한 권리는 대개 ‘갑’(방송사)에 있다. 촬영원본과 재방권을 비롯해 출판·도서·영화·DVD·VOD 등 2차 저작물에 대한 권리도 모두 ‘갑’에게 있는 것이다.

다수의 독립PD에 따르면 국내 방송사에 방영권만 팔 경우 1000만 원 정도를 부르고 방영권과 2차 저작물에 대한 권리 등 모든 걸 포기하는 조건이어야 최대 5000만 원 안팎까지 제작비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방송사가 저작권이라는 족쇄를 틀어쥐고 있어 제작사는 선택할 수 있는 플랫폼이 적다. 결국 방송사의 ‘힘의 논리’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또 제작사가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제작비 공모에 지원할 경우 지상파의 편성의향서를 제출하는 경우가 많다. 제작사는 제작비를 충당해야 하기 때문에 방송사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계도 있다. 한 PD는 “애써 지원금을 받아도 헐값에 제작해 (방송사에) 넘길 수밖에 없다. 선택의 여지도 없고 창작자의 권리도 보장되지 않는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런 현실적인 여건을 감안할 때 최근 종편채널에 방송된 독립다큐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이들 독립다큐 세 편은 대부분의 권리를 넘겨주지 않아도 됐다. 종편채널은 방송용 방영권과 국내에서의 재판매권만 요구하고 지상파의 방영료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고 종편채널의 등장이 현재의 구조를 깰 수 있는 대안은 아니라고 독립PD들은 목소리를 모았다. 이들은 종편채널이 제작사와의 관계에서 ‘파트너십’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결국 또 다른 ‘슈퍼 갑’의 출현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독립PD는 “(종편채널을 둘러싼 출범 배경을 논외로 한다면) 지상파가 지닌 독과점과 착취구조를 깰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힌 뒤 “(종편채널이) 창작자들에게 지상파만큼 제작비는 주지 못해도 상생하겠다는 의지를 명문화하면 획기적이겠지만 그렇게 될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 이승준 PD가 연출한 <신의 아이들>

‘상생의 물꼬’ 틀 수 있을까

상황이 이렇다보니 독립PD들은 지상파가 아닌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 방송사’라는 타이틀보다는 작품의 퀄리티를 우선으로 보는 해외시장에 작품을 내 제작지원을 받고 있다. 한 독립 PD는 “국내가 아닌 해외 방송사와 공동기획으로 다큐멘터리를 영화제에 출품하는 경우가 있는데 한편으로 씁쓸하다”며 “이왕이면 국내 방송사와 파트너십을 갖고 국제무대에 나가 양질의 콘텐츠로 인정받고 싶은 게 더 크다”고 말했다.

언론학자들은 외주제작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정책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정수 서울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저작권 문제는 양 사업자간 힘의 관계에 있어서 협상력이 강한 쪽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정책적, 산업적으로 콘텐츠 시장을 활성화 시키려면 힘의 균형을 보완해줄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만제 한국콘텐츠진흥원 정책연구팀 수석연구원은 “드라마 경우 그나마 시장 원리에 따라 운영이 되지만 비드라마(시사·교양)는 편성에 비해 광고나 협찬고지 등 많이 붙지 않는다”며 “외주제작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뒤따라야 문제가 개선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외주제작 구조 개선에 대한 움직임이 있다. EBS는 독립제작사와 지난 5월 협력제작 프로그램의 촬영 원본 사용권을 제작사와 공유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EBS는 제작사와 촬영원본을 공유하고 2차 저작물에 대한 수익을 양측이 공유하기로 한 것이다. 아리랑 국제방송도 방송사가 프로그램에 대한 저작권의 일체를 지니고 있더라도 제작사에 2차 저작물에 대한 사용권을 주기로 내부 규정을 바꿨다.

이홍기 한국독립PD협회장은 “EBS의 촬영 원본 사용권 공유는 방송사와 독립PD간 공동 발전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며 “사용권 공유는 창작권을 인정하는 사례이기에 앞으로 더 발전된다면 해외 진출의 물꼬도 트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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