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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MBC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보여준 ‘무도정신’

▲ 2011 방송연예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유재석.
‘2011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남자최우수상을 받은 유재석의 수상소감이 화제다. 유재석은 소감 중 “내년에는 방통위에 계신 위원님들에게도 큰 웃음을 드릴 수 있게 노력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유재석이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 이하 방통위)를 언급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올해 방통위는 유력일간지 <조선><중앙><동아><매경>에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을 허가한 뒤 해당 방송사에 ‘황금채널’ ‘의무재송신’ ‘방송발전 기금유예’ 등 각종 특혜를 안겨주며 지난 12월 1일 개국을 도왔다. 개국 이후에는 최시중 위원장이 주요 기업 광고주들을 만난 자리에서 종편에 광고를 넣으라는 취지의 압박성 발언을 한 것이 <한겨레> 1면에 보도되며 “방통위원장이 종편 광고팀장이냐”며 파문이 일기도 했다.

만약 유재석이 올 한 해 방통위의 이 같은 ‘발자취’를 염두하고 발언했다면, 그는 당장 김제동이나 김미화처럼 ‘소셜테이너’의 반열에 오르며 2012년 ‘코미디언 안철수’로 떠오를지 모르겠다. 하지만 유재석이 말한 방통위는 최시중의 방통위가 아니라 박만 변호사가 위원장으로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다. 유재석이 방심위를 방통위로 착각하고 말한 것이다.

이는 대부분의 시민들이 흔히 헷갈리는 경우 중 하나다. 일단 ‘심의’만 빼면 이름이 비슷하다. 또 방통위는 방심위의 상급단체다. 예컨대 방심위가 <무한도전> 방송분의 ‘저속표현’이나 ‘협찬고지 위반’ ‘폭력적인 장면’ 등을 심의‧의결할 경우 그 결과를 방통위가 최종 결제하는 식이다. 그래서 헷갈리기 쉽다.

▲ <무한도전> '스피드 특집'편의 한 장면(좌)과 방심위를 패러디한 자막(우).
유재석이 출연하는 MBC <무한도전>은 올해 방심위의 ‘심의’로 방송 재허가시 감점요인이 되는 ‘경고’를 받는 등 곤혹을 겪었다. 지난 8월 27일 ‘소지섭 리턴즈’ 방송분에 대해 방심위는 ‘저속 언어 사용과 간접광고 문제’ 등을 이유로 ‘경고’를 의결했다. 지난 9월 17일 ‘스피드 특집’ 편에 대해선 차량 폭파 장면을 반복적으로 청소년 시청보호 시간대에 내보냈다며 ‘권고’를 내렸다. 이를 두고 사회풍자적인 〈무한도전〉에 대한 표적심의 아니냐며 시비가 일었다.

당시 권혁부 방심위 부위원장은 ‘소지섭 리턴즈’ 방송분을 두고 “오락프로그램으로서는 수준 이하”라며 혹평하기도 했다. 심의위원 내부에서는 대중들과 괴리된 위원들의 도덕관에만 맞춰 제재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있었다. 올 가을 계속되는 심의 제재를 두고 김태호 PD는 <PD저널>과의 통화에서 “(방심위가) 두렵다고 안 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방심위와 제작진은) 각자의 일이 있다. 우리에겐 만드는 일이 있다”며 연출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연출 의지는 곧바로 프로그램에서 드러났다. <무한도전>은 각종 방송분에서 방심위의 심의를 웃음거리로 승화하는 자막과 설정을 통해 심의로 인해 위축될 수 있는 분위기를 넘겼다. 지난 ‘무한상사 오피스’편에서 나왔던 배현진 아나운서의 바른말 특강이나 “착하지만 모자란 형” 같은 유행어 제조는 좋은 예다.

김태호 PD가 올 가을 방심위를 들락거리는 모습을 보며 유재석을 비롯한 출연진들이 녹화에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특히 ‘일인자’ 유재석의 경우 책임감이 더 심했을 것이다. 잦은 심의로 인해 프로그램이 흔들릴 경우, 제일 먼저 김태호 PD와 이야기를 했을 법한 이가 유재석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연말 시상식에서 “방통위(방심위)에 계신 위원님들에게도 큰 웃음을 드릴 수 있게 노력 하겠다”고 말한 것은 상징적이다. 얼핏 들으면 ‘앞으로 잘 할 테니 지켜봐주세요’처럼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유재석의 말에는 뼈가 있다. 그의 한 마디는 지금껏 <무한도전>이 사회를 풍자하고 시청자의 결핍과 욕망을 채워주던 방식 그대로, 즉 무도만의 방식으로 방심위원들을 웃겨 보이겠다는 자신감과 도전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과연 유재석, 김태호, 무도다운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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