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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視角)과 시선(視線)

|contsmark0|심심할 때 가끔 사전을 뒤적이는 버릇이 생겼다. 시각(視角)과 시선(視線)은 이웃사촌인데 그 집의 내부는 사뭇 다르다. 시각은 ‘물체의 두 끝에서 눈에 이르는 두 직선이 이루는 각’이다. 시선은 ‘안구의 중심점과 외계의 주시점(注視點)을 연결하는 선’이다.
|contsmark1|여의도 ‘꿈의 공장’을 떠난 지 2년이 가까워 온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퇴근길에선 습관처럼 내가 예전에 근무하던 회사 쪽으로 시선이 간다. 입에선 자연스럽게 노래가 맴돈다. “강 건너 공장의 굴뚝엔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고” (김민기 작사, 작곡 ‘강변에서’)
|contsmark2|공장 안에 있을 땐 연기가 보이지 않았고 공장 앞마당에서도 잘 보이지 않았으나 강 건너 어느 지점에 이르러 보니 연기가 시각에 잡힌다. 연기는 기계가 잘 움직인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청정하늘을 더럽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강을 건너며 나는 ‘어떻게 연기를 줄일까’ 생각하는 재미를 추가로 얻었다.
|contsmark3|올해 초 ‘공장’에 입사한 신입 pd들이 현업에 배치된 지 몇 개월 후 가진 간담회 기사( 제17호, 2001. 10. 30)에 시선이 머물렀다. 세 군데에 밑줄을 그었다.
|contsmark4|하나. 바쁘고 여러 가지로 많이 배우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점점 생각이 없어지는 것 같다.둘. 하고 싶은 것을 그냥 다 할 수 있고,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방송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셋.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서 나중에 독립할 생각을 하고 있다.
|contsmark5|읽다가 ‘아니 벌써’라는 말이 세 번 나왔다. 생각하면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할텐데 ‘벌써’부터 생각이 없어진다니 걱정이 된다. 그러나 그 이유가 바로 아래에 나와 있다. 방송현실이라는 괴물이 ‘벌써’ 젊음의 패기와 힘 겨루기(길들이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들어온 지 얼마 되었다고 ‘벌써’ 방송사를 떠날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contsmark6|후배들에게 말한다. 현실이 어떻건 간에 절대로 생각의 행진을 멈추지 마라. 생각의 방향을 쉽게 바꾸지도 마라. ‘왜 당신은 pd가 되려고 하느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하고 떳떳하게 그 관문을 통과했듯이 스스로에게 늘 질문하고 또 대답하라.
|contsmark7|독립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조직으로부터 독립했다고 해서 대중의 야릇한 기호로부터, 혹은 상업주의 그물로부터 독립할 수는 없다. 오히려 독립만세 부른 후가 문제다. 입장이 바뀌면 시각도 시선도 바뀌는 게 세상풍속이다. pd 입장, 기자 입장, 신입사원 입장, 경영자 입장, 외주제작사 입장….
|contsmark8|친분이 있는 기자가 전화를 걸어 “제 입장 아시죠”하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기자로서의 시각을 이해해 달라는 뜻이다. 언론사 시험을 열심히 준비한 사람들은 아마 느꼈을 것이다. 그들은 본의 아니게 여러 차례 만나게 된다. (부딪친다는 표현이 더 나을까) 마침내 누구는 신문사로 가고 누구는 방송사로 간다. pd가 될 뻔했던 기자는 말한다. ‘어떻게 이렇게 만들 수 있나’ 기자가 될지도 몰랐던 pd는 말한다. ‘어떻게 이렇게 평할 수 있나’
|contsmark9|입장 안에서 발언한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입장 안에서만 살다 입장 안에 갇혀 죽는다는 건 참 우울한 일이다. 고로 신입들이여. 입장을 다면화하여 시각을 넓혀라. 그러나 시선은 한결같아야 한다. 모름지기 입체적 시각과 따뜻한 시선을 견지하라.
|contsmark10|주 철 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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