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의 ‘경고’…결국 “제작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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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의 ‘경고’…결국 “제작거부”
[분석] MBC 기자들, 왜 제작거부 각오했나
  • 정철운 기자
  • 승인 2012.01.18 1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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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받는 우리뉴스 더 이상은 못 참는다”  지난 13일 오전 서울 MBC 여의도 본사 1층 로비에서 기자들이 전영배 보도본부장과 문철호 보도국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피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MBC노조

▲ “조롱받는 우리뉴스 더 이상은 못 참는다” 지난 13일 오전 서울 MBC 여의도 본사 1층 로비에서 기자들이 전영배 보도본부장과 문철호 보도국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피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MBC노조
“불공정 보도 절정에 달해”… 선거 편파보도 막기 위한 ‘최후 카드’

“만약 경영진이 기자들의 결단을 존중하지 않고 정권의 부당한 압력에 굴복하거나 공정보도를 훼손할 경우, 우리는 언제든 다시 전면적인 행동에 들어갈 것임을 분명히 경고한다.” (2009년 4월 22일 MBC 보도본부 차장·평기자 비상대책위원회 성명)

3년 전 기자들의 경고는 현실이 됐다. MBC기자들은 더 이상 불공정 보도를 참을 수 없다며 피켓을 들었다. 동료들이 쫓겨나고, 징계를 받을 때도 “마이크만은 내려놓지 못하겠다”던 기자들이 집단행동을 결정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 유리한 시기 왔다 = 지난해 MBC노조는 시사교양국과 라디오본부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제작 자율성 위축과 보복성 인사에 반발하며 사장 퇴진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기자들은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지난해 9월 파업 국면에서도 기자들은 ‘시기상조론’을 이유로 제작부문 쪽 조합원들과의 온도차를 보였다. 그런데 불과 4개월 만에 보도본부의 여론은 달라졌다.

일단 지난해 재·보선 이후 달라진 정치 지형과 대통령의 임기 말 레임덕이 가속화되면서 승기를 잡을 수 있는 ‘결정적 시기가 왔다’는 기자들의 내부 여론이 생겼다.  김재철 사장도 앞으로 임기가 2년이나 남은 시점에서 정권교체 여부 때문에 현 정부에 맹목적이기도 어렵고 당장 사퇴할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이라 행보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현 시점에서 기자들의 제작거부와 MBC노조의 총파업이 진행될 경우 사측이 물리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여론이 불리해지면 곧바로 4월 선거에 영향을 주는 대외적 조건 때문이다. MBC 내부에선 김재철 사장도 차기 권력을 염두하고 눈치를 보지 않겠냐는 분석도 있다.

또 기자회의 제작거부 배경에는 전영배 보도본부장에 대한 불신도 깔려있다. 전영배 보도본부장은 3년 전 보도국장으로 있으면서 신경민〈뉴스데스크〉 앵커를 경질해 기자들의 반발로 40여일 만에 사퇴했다. 그런데 지난해 3월 보도본부장으로 다시 복귀했다. 한 인물로 인해 두 번이나 불신임 투표와 제작거부를 겪는 상황은 김재철 사장의 인사 실패의 대표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 추락한 뉴스신뢰…극약처방 필요했다 = 기자들 입장에선 전영배 본부장 취임 이후 1년 간 추락한 뉴스 신뢰도를 극복하기 위해 극약 처방이 필요했다는 분석이다. MBC뉴스는 권력비판적인 단발성 기사 몇 꼭지만으로 ‘편파뉴스’라는 이미지를 극복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 MBC기자회가 밝힌 2011년 MBC뉴스 불공정보도 일지에 따르면 △강원도지사 엄기영 후보의 불법선거운동 물타기 보도 △반값 등록금 이슈 소극보도 △KBS 도청의혹 축소 보도 △〈PD수첩〉 대법원 판결 왜곡 보도 △10·26 재보선 불공정 보도 △MB내곡동 사저 의혹 누락 및 축소보도 등이다. 지난 1년 간 편파보도는 절정에 달했다고 기자들은 보고 있다.

더욱이 기자들은 지난해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편파보도’를 기점으로 취재 현장에서 시민들에게 모욕과 조롱을 받았다. 현장에서 쫓겨난 일은 1987년 이후 처음이었다. 그러자 수면 아래 있던 기자들의 분노가 최근 기자총회에서 폭발했고, 강력한 저항을 보여줘야 돌아선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여론이 모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기자들 내부에선 보도가 무너진 것은 자명하지만 제작거부라는 방법을 놓고서는 이견이 있다. 상황에 대한 심각성은 모두가 공유하고 있으며, 제작거부는 수순이라는 의견이 많지만 “파업을 안 해서 보도가 망가진 것은 아니다. 제작거부가 근본적 처방은 아니다”(MBC의 한 기자)라는 의견도 있는 상황이다. 또 현 상황이 설령 기자들에게 유리할지라도 제작거부는 큰 모험일 수밖에 없다. 사측은 이미 박성호 기자회장의 징계를 예고했으며 기자회의 불공정보도 주장에 대해 명예훼손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그럼에도 기자들이 제작거부를 결의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보도국 간부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현 정권에 유리한 보도를 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따른 것이란 지적이 많다. 기자들의 결의는 김재철 사장 퇴진을 위한 총파업을 준비 중인 MBC노조에도 동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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