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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말 민주통합당 출범 후 첫 최고위원회에 미디어렙 여야협상 관련 보고가 올라왔다. 한나라당이 조·중·동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미디어렙 유예, 미디어법 통과기준 3년 유예, 민영미디어렙에 해당 방송 출자 40% 등을 고집하고 있어 좀처럼 협상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보고였다.

애초 한나라당은 미디어렙 법안을 만들 의사가 없었으며, 방송광고시장 황폐화를 막고 광고취약매체를 보호하기 위해 ‘민주당’이 양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구두보고가 덧붙여졌다. 이어진 후속 논의를 통해 한나라당이 최종안으로 내밀었다는 안 속에 ‘이종매체와 동종매체간 광고교차허용’(이른바 크로스 미디어)까지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일 한나라당 최종안으로 미디어렙 법안이 만들어지게 되면 미디어렙 법안을 만들지 않아 벌어질 방송광고시장 황폐화를 법적으로 추인해주는 결과가 오리라는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런데 이 법안은 광고취약매체를 보호할 수 있는 조항이 들어 있어 일정 기간 동안 종교방송이나 지역방송 생존을 가능하게 해주는 긍정적인 내용도 담고 있었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 ‘조중동종편’의 공동전선을 막기에는 민주당 의석수가 너무 적었고, 작은 방송들이라도 살리고자 하는 ‘충정’은 평가받을 일이었다. 하지만 그 ‘충정’으로 치러야할 대가가 컸다.

무엇보다 작은 방송을 살리는 데 소수야당이 양보해야하는 상황이 헤아려지지 않았다. 어불성설의 상황 이면에는 늘 ‘나름의 역사’가 있기 마련이다. 한나라당은 강짜를 부리고 민주당이 ‘양보’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가진 ‘역사’는 후속논의 원탁에서 금방 드러났다.

헌법재판소에서 코바코 광고독점영업이 위헌판결을 받은 이후 거대여당 한나라당은 서둘러 미디어렙법을 입법해 방송광고시장 정상화 토대를 마련해야 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조·중·동에 보은하기 위해 종편을 탈법적으로 밀어붙였고 미디어렙법 논의는 외면했다. 무법상태를 악용한 조·중·동 종편의 약탈적 광고영업을 막고 방송광고시장의 룰을 만들기 위한 시민사회와 방송계의 노력은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에 의해 철저하게 무시당한 것이다.

시민사회는 지쳐있었고 작은 방송들은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위험에 직면해 있었다. ‘법안을 빨리 만들어 작은 방송사들을 살리자’는 주장에 힘이 실렸고 소수야당이 ‘문제가 많음’을 인정하면서 미디어렙법안 통과를 서둘렀으나 결국 미디어렙법안은 지금 이 순간까지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애초 80여석 소수 제 1야당이 미디어렙법 논의에서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제한되어 있었다. 원칙을 지키고, 총선 승리를 위해 전력을 기울인 뒤 미디어렙 법안을 논의하자고 하든지, 광고취약매체들을 보호하되 원칙은 상당부분 훼손된 미디어렙법안을 수용하든지 양자택일의 길이 그것이다. 민주당은 양보를 택했지만 문제는 민주당에 있지 않았다. 

민주당이 양보하면 한나라당은 수시로 입장을 바꾸며 더 많이 요구했다. 급기야 한나라당은 ‘KBS 수신료인상소위’ 구성 건을 미디어렙 법에 얹어 법안을 상임위에서 단독처리했다. 조·중·동 종편의 미디어렙 편입 3년 유예 기준을 미디어렙법 통과시점이 아니라 사업허가시점으로 늘렸다. 종편의 직접영업 기간은 2년에서 2년6개월로 연장됐다.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여야가 합의한 법안은 한 점 한 획도 수정할 수 없다’던 한나라당이 자신들이 단독 처리한 법안에 조·중·동 종편에 불리한 조항이 발견되자 수정을 요구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미디어렙법 13조 2항은 ‘누구든지 대통령령이 정하는 특수한 관계가 있는 자는 (미디어렙에) 40%를 초과소유할 수 없다’고 해놓았으나 같은 조 3항은 ‘2항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신문(특수관계자 포함)과 뉴스통신을 경영하는 법인은 10%를 초과소유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13조 3항에 따르면 신문사가 대주주인 종합편성채널은 렙 지분을 10% 초과해 소유할 수 없다. 한나라당은 조중동 종편과 같은 방송사업자는 3항의 10% 초과소유 제한 대상에서 빼자고 주장했다.

문제는 한나라당과 조중동, 종편의 횡포다. 미디어렙법 논의는 이미 방송광고시장관련 의제가 아니다. 거대여당과 거대보수매체들의 횡포에 대항한 한판 승부답게 문제를 풀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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