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그렇게 일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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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그렇게 일 년
  • 김나형 MBC 라디오 PD
  • 승인 2012.01.31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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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형 MBC 라디오 PD

작년 봄, 나는 메모장에 이런 글을 썼다가, 그냥 그대로 묻어두었다.

<동부이촌동에 ○○○이라는 가게가 있습니다. 이촌동의 ‘일본인 거주지로서의 면모’를 대변하는 오래된 식당으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집입니다. 별스러울 것도 없고 소박하지만, 담담한 내공이 느껴지는. 맛있는 일본 음식을 팔았지요.

‘팔았지요’라는 과거형 어미를 쓴 것은, 얼마 전 밥을 먹으러 갔다가 이 오래된 식당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육감이라는 게 묘하지요. 아무것도 모른 채 가게에 들어섰음에도,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으니까요. ‘뭐지, 평소랑 좀 다른데.’ 달라진 메뉴판을 보는 순간, 불안은 곧 사실이 되었습니다. ‘아, 주인이 바뀌었다….’ 제겐 큰 충격이었습니다.

슬픔과 우울함이 밀려왔습니다. 오랫동안 늘 그 자리에서, 제대로 된 음식을 팔아 온 가게는 흔치 않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가게가 없어졌네요. 이름은 그대로지만 같은 가게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색한 메뉴판을 보면서, 아마 이제 더 이상 이곳에 올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슬픈 예감을 굳이 확인하는 것이 잔인하여 ‘주문을 하지 않고 돌아갈까…’ 잠시 생각했지만, 의외로 훌륭한 후계자가 뒤를 이어받았을지도 모른다는 부질없는 희망에 기어이 속고 말았습니다. 사실은 내심 속고 싶은 마음이었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바랐던 희망은 그 곳에 없었습니다. 음식 하나를 먼저 주더니, 다음 음식은 30분 후에야 나왔고, 미소장국은 차가웠죠. 따뜻한 국을 줄 수 있냐고 했더니, 테이블에 놓인 것을 ‘수거’해 가서는 거기다 물을 붓고 끓여서 갖다 주었습니다. 그러는데 다시 10분이 걸렸고, 이미 식사는 끝나가는 상태였지요. 맛은 굳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요리를 제 때 내지 못하는 가게. 된장국은 따뜻하게 내는 것이라는 개념이 없는 가게. 한 마디로 기본이 안 된 가게였습니다. 아무리 맛이 있다 하더라도 이런 집에 가고 싶을 리 없고, 기본이 안 된 집이 맛있을 리도 만무하지요.

옆 테이블에는 역시 오랜 단골인 듯한 일본인 아저씨 두 명이 앉아 큰 소리로 타박을 했습니다. “마즈이(맛없어)!” 제가 그 집에 다시 가지 않을 것이듯, 저 아저씨들도 이제 가지 않을 것입니다. 저희가 자리를 뜨려는 무렵 “미소라멘 하나 빨리 되죠?” 하며 들어선 젊은 부부도 아마 발길을 끊을 것입니다. 미소라멘은 분명 빨리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맛은 형편없었을 테니까요.

오랫동안 쌓아 놓은 이름값에, 잠시 장사는 되겠지만 한방에 훅 가겠지요. 좋은 손님들은 순식간에 떠나고, “이 집이 그렇게 유명한 집이래” 지껄이며 들어오는 얼치기 뜨내기들이 한동안 자리를 메우겠지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런 얼치기들마저 찾지 않는 집이 될 겁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으로 울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왜 슬픈지 모르시겠다구요? 그렇다면 당신은 ○○○의 이야기를 남의 일로 들으신 게로군요.>

▲ 김나형 PD
작년 봄, 나는 이 가게의 모습에서 MBC 라디오의 모습을 겹쳐보았고, 속절없이 슬퍼졌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난 지금 MBC는 파업. ‘이제 와서…’라는 마음과 ‘이제라도’라는 마음이 복잡하게 뒤섞여서, 작년 봄에도 지금도, 나는 잠을 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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