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 빠진 이들에게 눈길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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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사생활 ⑤] 주목받는 서정시인 문태준 불교방송 PD

문태준 불교방송 PD는 시인으로 이름이 더 알려져 있다. 지난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 ‘처서’ 외 9편이 당선돼 등단했다. 대학 졸업반에 등단한 그는 2년 뒤에 불교방송에 입사했다. 그는 이후 꾸준히 시를 쓰면서 때묻지 않은 언어와 고향냄새 나는 따뜻한 시로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 불교방송 사옥에서 문 PD를 만났다.

그에게 시는 “안 쓸 수 없는 것”이다. 그의 몸에서 빠져 나오지 않는 언어는 목구멍에 걸린 가시같이 불편한 존재다. “무엇이 지속적으로 시를 쓰게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내부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끄집어 내지 않으면 불편해요. 참을 수 없는 불쾌감이 있는 거죠.”

그는 “섬광처럼 들어온 문장을 토해내듯 시를 쓴다”고 했다. 바로 문장을 받아쓰지 않으면 섬세한 언어가 변질이 되기 때문이다. 시를 쓴 이후에는 억지로 기억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의 시 가운데 외우는 시가 없다. 다만 집중했던 순간만 남는다.

“너무 뻔한 것들은 오래 두기 어렵잖아요. 눈앞에서 바로 들켜버리는 시는 좋은 시가 아닌 거 같아요. 두 번 읽고, 나중에 또 봤을 때 빛깔이나 냄새가 다르게 느껴지는 시, 단단하고 너른 내부가 열리는 느낌이 드는 시가 좋아요.”

▲ 문태준 불교방송 PD
■“문인들이 좋아하는 시”= 문 PD는 등단한 이후 18년 동안 2~3년에 한권씩 시집을 낼 정도로 꾸준히 시를 썼다. ‘가재미’는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로 뽑혔고, 2004~2006년엔 문학상을 휩쓸다시피 했다. 젊은 시인에게 갑자기 쏟아진 관심이 버겁기도 했다. 그는 주목받았던 그때보다 대중의 관심이 뜸해진 요즘 한결 여유로워 표정이었다.

 “무엇을 쓰더라도 남들의 이목이 따라다닌다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었어요.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이 시기를 잘 보낸 것 같습니다.”

이달 말이면 그의 다섯 번째 시집이 나온다. 2008년 ‘그늘의 발달’ 이후 4년 만에 펴낸 시집이다. 문 PD는 그의 신작 시집을 소개하면서 그동안 보여줬던 시 세계와는 다른 변화를 이번 시집에서 엿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생각의 속도를 늦추는 것, 지금의 생과 내생으로 연결되는 삶을 보는 순간, 존재와 대화적 상상력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어요. 불교적 색채가 강화된 시집입니다.”

그동안 그의 시에서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문 곳은 고향이었다. 어린 시절 나무를 하고 멱을 감던 고향에서 그의 시도 태어났다. “고향에서 많이 빠져 나왔지만 도시적인 공간으로 나온 건 아니죠. 보다 존재론적 이야기로 이동한 게 아닌가 싶어요.”

■‘고향’과 ‘슬픔’의 정서= 그의 시선이 이동한 데는 불교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이는 무관해 보이는 그의 시와 직장을 잇는 끈이기도 하다. 성전스님이 진행하는 <행복한 미소>를 비롯해 <오늘의 법문> 등의 프로그램을 연출하면서 자연스럽게 불교의 세계에 입문했다. “아무래도 제 시를 움직이는 큰 바퀴는 불교가 될 것 같습니다. 스님들과 방송을 함께 하면서 힘들 때 버티게 하는 힘이나 욕망하지 않겠다는 배움을 얻었습니다. 수행은 아직 멀었지만요.”  

그의 시의 특징을 꼽자면 시 전반에 깔려있는 슬픔이다.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있다.’(‘가재미’ 중에서) ‘가재미’ 첫 문장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이의 슬픔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삶은 아름답지만 순간적이고 누군가와의 이별이 예정돼 있어요. 변화가 지속될 뿐이죠.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무상이라는 개념과 비슷합니다. 슬픈 이야기가 많은 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이지요.”

이별 노래처럼 슬픈 시도 위안이 된다. 그의 시를 읽고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 그가 시를 쓰는 또 다른 이유다. “제가 쓰는 시가 정신적인 우환을 겪는 사람들에게 슬픔을 객관화하면서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누군가의 위안이 되길 바라면서 시를 쓰지만 문 PD가 놓인 현실도 녹록지 않다. 바깥 세상에 눈을 돌리면 시심을 어지럽히는 현실과 마주친다. “시를 쓰기위해서는 예민하고 적적한 마음 상태가 유지되어야 하는데 그걸 유지하는 게 어려운 일이죠. 요즘 방송환경은 ‘높은 파도 위에 있는 배’처럼 위태롭죠.”

그는 시인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우리 사회에서 시가 대단한, 정치적 역할을 하는 시대가 다시 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시는 창과 같이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타자의 시선을 이해하고, 다른 대상을 나와 가지런히 놓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죠. 제 시를 통해 생태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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