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과 음표 사이를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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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사생활 ⑥] ‘피아노 홀릭’ 김영욱 SBS PD
  • 방연주 기자
  • 승인 2012.02.13 1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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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 SBS PD
김영욱 SBS PD가 펴낸 책 ‘피아노 홀릭’

88개 건반 위를 달리는 연주자의 손놀림은 경이롭다. 아름다운 선율에 현혹돼 유년시절 피아노학원에 문을 두드린 사람들이 제법 많은 만큼 ‘체르니’의 벽을 넘지 못한 사람도 비일비재다. 여기 피아노에 푹 빠진 한 사람이 있다. 김영욱 SBS PD다. 그는 클래식 음악사와 피아노 연주를 독학했다. 작년에는 <피아노 홀릭>이라는 책을 통해 피아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풀어냈다. 본인이 직접 연주한 연주곡들도 함께 말이다.

그야말로 ‘피아노 홀릭’인 김영욱 PD는 2000년 SBS에 입사해 <인기가요>, <김윤아의 뮤직웨이브>, <김정은의 초콜릿>등의 음악 프로그램 등을 주로 맡아오다 지금은 스타 부부 토크쇼 <자기야>를 연출하고 있다. 피아노 음악을 향한 사그라지지 않는 열망을 지닌 김 PD를 지난 9일 오후 서울 목동 SBS사옥 내 카페에서 만났다.

김 PD에게 ‘피아노’는 삶의 일부이다. ‘PD’라는 정체성만큼 ‘연주자’로서의 갈망도 또렷해 보였다. 그는 “사실 예·체능 계열은 안 배워지는 것 같다. 엄밀히 본인의 실력이 세련되게 조탁될 수 있을지언정 타고나는 게 크다”라고 말했다. 이어 자신을 가리켜 “음악에 대한 열망을 타고났을 뿐 ‘능력’을 타고나지 않았다”라며 “남들은 3개월이면 마스터할 쇼팽 소나타를 (자신은) 6개월이 걸릴 정도로 아마추어인 셈”이라고 덧붙였다.

▲ 김영욱 SBS PD
그만큼 김 PD는 유년시절부터 ‘피아노 음악’이라고 하면 보물 찾듯 부지런히 구석구석 헤맸다.

“어릴 적만 해도 남자는 태권도를 배워야한다는 통념이 있었죠. 그렇다보니 아버지께서는 운동을 하라며 캐치볼이나 농구공을 사주곤 했지만 재미가 없었어요. 그에 반해 피아노는 소위 마려워서 치는 아이였죠. 아버지가 집에 계시는 일요일이면 피아노를 못 치니까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니까요.”(웃음)

이처럼 김 PD는 피아노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악보를 구하기 위해서’ 눈에 불을 켜고 다녔다고 한다. 그는 “집에서 피아노 배우는 걸 서포트(지원) 받지 못하니까 악보로 보고 배우는 게 유일했다”라고 말했다. 당시 김 PD는 부지런히 용돈을 모아 서울 청계천 황학동을 활보했다고 한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악보를 발견할 때면 본인이 칠 수 있건 없건 “누가 먼저 사갈까 봐 마음을 졸였다”라고 회고했다.

이어 김 PD는 돈이 넉넉지 않아도 레코드 가게를 향하던 게 유일한 낙(樂)이었던 유년시절을 언급했다. 그는 “주말마다 신나라 레코드에 가서 길게 늘어선 클래식 음반 진열장을 끝에서 끝까지 뒤져보고서 간신히 음반 한 장 사서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고 오는 게 취미였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모은 악보 컬렉션과 음반은 현재 김 PD의 재산목록 중 보물 1호다.

또 작년에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바로크, 고전파, 낭만파 등 서양음악사의 흐름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피아노 음악 서적 <피아노 홀릭>을 출간하기도 했다. 더불어 본인이 직접 연주한 45개 연주곡들도 담았다. 3년에 걸쳐 밤낮으로 시간을 쪼개서 글을 썼고 직접 곡을 연주해 녹음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

이쯤하면 취미를 넘어선 피아노를 향한 ‘이끌림’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다. 김 PD의 30여 년의 피아노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피아니스트로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를 꼽았다.

 “어릴 적 프랑스에서 살 때 우연히 호로비츠의 모스크바 공연 중계를 TV를 통해서 접했죠. 당시 노년의 호로비츠가 건반 위에서 정말 자유로워 보이더라고요. 호로비츠는 저에게 있어 피아니스트로서의 스타일을 잡아준 연주자이죠 .”

한편 김 PD는 유년시절에 비하면 프로그램을 만드는 PD로서 원하는 음반과 다양한 음악들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어 여건이 훨씬 나아졌지만 외려 음악을 덜 찾아 듣는 편이 된 것 같다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세상이 너무 좋아졌잖아요. 예전에는 희귀한 레퍼토리의 악보를 구하기가 힘들다보니 딱 찾았을 때 희열이 있었죠. 또 LP나 카세트테이프 시절엔 전곡을 다 들어야 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인터넷에서 손쉽게 악보를 구할` 수 있고 듣고 싶은 것만 파일로 골라 들으니 음악에 대한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편리함이 박탈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 김영욱 SBS PD가 펴낸 책 ‘피아노 홀릭’
김 PD의 말마따나 클래식 입문에는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듯 보였다. 클래식 음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싶거나 피아노 연주를 다시 시작해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조언을 구하니 의외로 간단한 답변이 돌아왔다.

“취미로 시작한다는 건 프로페셔널이 된다는 게 아니잖아요. 바둑 급수처럼 체르니를 배우는 등 정석의 방법만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결국 본인이 ‘클래식’이나 ‘피아노 연주’에 취미가 있다면 나름의 방법으로 길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마지막으로 김PD는 작년 책 <피아노 홀릭> 발간과 함께 토크를 겸한 작은 개인 연주회를 여는 등 뜻 깊은 경험을 하기도 했다고 말을 전했다. 앞으로 김 PD는 지금까지 30년 피아노 인생을 어떻게 변주해나갈까.

“주변 사람들은 ‘피아노 연주’를 두고 제게 돈은 안되지만 좋은 취미를 갖고 있다고 하죠. 하지만 저는 업으로 한 사람에게는 굉장히 고된 작업이고 어려운 길이라는 걸 잘 알아요. 그럼에도 제가 50~60대가 되면 모든 걸 다 버리고 ‘피아노 음악’ 쪽을 택해서 그 길을 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만큼 피아노를 정말 좋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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