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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낭독의 발견’ 폐지에 부쳐

‘후두둑 낭독 지다’라고 ‘카카오톡’에 문패를 단 지 벌써 3주째다. 나도 이제 그 맥없는 소리를 접어야 할 시간이다.

방송은 생물이라고 한다. 생물은 야채와 과일, 고기와 생선 등 선도가 우선시 되는 먹을거리에 우리가 붙이는 통칭인 것으로 볼 때 <낭독의 발견>이란 생물은 이제 더 이상 신선한 먹을거리가 아니며 누구도 찾아 먹을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한 밤중, 신 새벽 이었어도 시청률이 좀 높았더라면 살 수 있었을까? 대한민국 공영방송의 격을 생각해서라면 절대 살려야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여론몰이를 했어야 했을까?  <낭독의 발견> CP 1년 반, 연출 1년 남짓의 PD로서 나의 생각과 애정이란 것이 겨우 이런 얕은 발상에 머무를 뿐이다.

400회를 불과 몇 회 앞두고 388회, 9년여를 지켜온 이 생물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것이 내 탓인 것만 같아 죄인 같은 심정이 드는 것은 분명한 나의 오버, 과잉일 터, 그럼에도 나는 누군가를 향해 사과문을 써야하는 착각 속에 빠졌던 지난 몇 주를 보냈다. 

프로그램 폐지 결정 통보는 마침 마지막 녹화 당일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마지막 녹화를 그렇게 비장한 심정으로 하지 않았을 수 도 있었는데 녹화 전 폐지 통보를 받고서 스튜디오로 향하는 나는 씁쓸함을 혼자서 안고서 가슴앓이를 해야만 하는 비련의 주인공이자 사망 통보를 스태프에게 전해야 만하는 객관적 전령의 두 가지 사명을 동시에 띤 참 애매한 그러기에  더더욱 마음이 상한 비극적인(?) 존재가 되어 있었다.

▲ KBS 1TV <낭독의 발견> ⓒKBS

검은 막이 드려진 무대엔 은하수가 피어나고 조명 바 사이사이에 흐드러진 꽃장식이 하나 둘 늘어난다. 마침 그날의 주제 ‘마당을 나온 암탉’의 무대였던 우포늪의 전경과 숲들, 연꽃의 그림들이 매어져 있고 텍스트낭독을 받혀 줄 피아노 연주자와 각종피리, 첼리스트의 울림이 부산하게 순서를 기다린다.

이 순간 모든 출연자와 연출자와 작가는, 음향과 조명 부조의 스태프는, 음악 감독과 무대감독은, 다섯 명의 카메라 감독들은 피할 수 없는 이 시대 방송의 숙명적 가벼움이나 거대한 독설, 재기발랄을 가장한 참을 수 없는 부박함을 잠시 잊은 듯 아직도  살아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은 아니 어쩌면 이미 오래 전 우리가 소멸시켜 버렸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지녔던 원천적 정서와 따뜻함, 아련함을 기대하는 퍼포먼스에 동참하는 것이다.

“자 오늘이 마지막 녹화였습니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 녹화 후 터져 나온 카메라 감독들의 안타까움과 한탄은 누구를 향한 위로가 될까? 심야에 잠 들 수 없어 우연하게 혹은 기다려 프로그램을 만나줬던 그 많지 않은 시청자들은 어느 채널에서 그 흔치 않던 퍼포먼스를 찾아 낼 수 있을까?

2003년 11월 첫 발을 떼고 생명을 입었던 <낭독의 발견>은 자칫 어렵고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는 시, 소설, 수필 등 고유의 문학 텍스트를 소리 내어 읽으며 몸을 통해 느끼는 제 3의 감각을 만들어 내고자 했다. 눈, 귀, 입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오감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울림! 음악인 전제덕 씨가 한자 한자 점자를 더듬어 가며 손끝으로 읽었던 ‘클라우스 후이징의 텍스트 ‘책벌레’의 여운은 여전히 나를 가슴 뛰게 한다 .

이미 수천 년 전에도 문학 작품을 읊는 낭독 행위는 있어왔다. 그리스와 고구려 그리고 수백전년 영국과 조선에도. 150여 년 전 영국의 소설가 차알스 디킨즈는 영국 곳곳을 돌며 낭독회를 열어 수입을 얻었다고 기록에 남아있다. ‘낭독’은 결코 새로운 행위가 아닌 인간정서의 가장 고양된 한 행위이자 표현일 뿐이다.

 <낭독의 발견>은 우리 문화 곳곳에 ‘낭독’이란 잊혀진 씨앗을 퍼뜨려 낭독 문화를 꽃피우게 했다. 이제 곳곳의 문화행사에서 만나는 문인이나 일반인의 낭독회는 더 이상 낯선 행위가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어있다.

2004년, 2010년 두 번의 방송대상이란 과분함을 안겨줬던 사랑하는 시청자들이여, 이제 낭독의 참 맛과 오감의 울림을 각자의 삶속에서 실현하여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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