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라도 ‘진짜 기자’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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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언론장악’ 4년을 보낸 한 기자의 절규

 

지난 22일 YTN의 사내 게시판에 YTN의 공정방송 추락을 탄식한 한 기자의 글이 올라왔다. 10년차 김수진 기자의 글이다. 그러나 사측은 해당 글을 반복적으로 삭제했다. 김 기자 외에도 2명의 기자들이 경영진을 비판하는 글을 비슷한 시기 올렸으나 사측은 가차없이 삭제했다. 결국 YTN노조는 김 기자의 글을 23일자 특보를 통해 공개했다. 노조는 “이런 글조차 못 쓰는 슬픈 현실이 YTN의 현재”라고 밝혔다. <PD저널>은 김수진 기자와 YTN노조에 양해를 구해 기고글을 전재한다.

단 하루라도 ‘진짜 기자’로 살고 싶습니다

노조가 곧 파업투표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파업투표에 들어가기 한참 전부터, 아마 선배들이 해직당한 1200일 전쯤부터 저의 정신은 파업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제 머릿속의 기자정신은 이미 폐업신고를 한 상태로 참으며, 혹은 숨을 죽이며 3년 넘게 살아왔습니다.

제 몸은 회사에 있으되 저의 영혼은 항상 다른 곳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더 이상은, 1분 1초도 부끄럽거나 비겁하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더 이상은 시청자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싶지 않습니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YTN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진짜 기자’로 살고 싶습니다.

‘시청률이 잘 나오고 있다. 우리 방송 잘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반문하는 분이 있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십시오. 최근 몇 년 동안 YTN에서 변변한 특종이 나온 적이 있나요? 집요하게 추적한 이슈가 있나요? 정부 정책에 제대로 된 비판을 한 적 있습니까? 괴로워하는 약자의 목소리를 들어 준 적이 있습니까?

<뉴스타파>를 보십시오. 저는 <뉴스타파> 첫 회가 방송된 날 부끄러움과 울분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마이크를 강제로 빼앗긴 사람들도 저렇게 애쓰는데, 아직도 멀쩡한 마이크를 쥐고 있는 나는 왜 이렇게 비겁한가 하는 생각이 잠을 앗아갔습니다. 시청률? 우리가 눈치를 보지 않고 제대로만 보도했다면 시청률은 지금보다 훨씬 잘 나왔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데스크에게 취재 아이템이 매번 킬(kill) 당하거나 축소되고, 싸우고 하는 과정을 거치다 못해 이젠 지쳐서 남들 하는 것만 따라가고 딱히 크게 이슈가 될 만한 보도는 알아서 피하는 ‘면피전문 기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자정신은, 아니 저의 기자정신은 어디 장식장에나 들어있는 박제가 되어버렸습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데스크의 검열이 아니라 우리의 머릿속에 어느 샌가 크게 자리 잡은 ‘자기 검열’입니다.

▲ 2011년 10월 7일 오전 서울 태평로 YTN 본사 후문 앞에서 열린 YTN 노조 집회에서 YTN조합원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날은 노종면 등 6명의 기자들이 해직(2008년 10월 6일)된지 3년이 되는 날이었다. ⓒ언론노조

그러는 사이 한미FTA 반대 집회를 취재 나간 후배 기자와 중계팀이 사람들의 질타와 위협을 견디다 못해 철수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그동안 우리 방송 잘 하고 있다고 얘기하는 분들에게 정말 묻고 싶습니다. YTN이라는 이름을 숨겨야만 취재가 가능한 현장이 늘어나고 있는데, 당신은 그래도 자랑스럽냐고.

YTN의 자랑스러운 이름에 먹칠을 한 사람은 과연 누구냐고 묻고 싶습니다. 돌팔매질(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날 뻔 한 상황이었습니다)을 당하는 막내 기자 앞에서 당신들은 그 돌을 맞아줄 각오가 되어있느냐고. 아니, 하다못해 미안하다고 사과라도 할 염치는 남아있느냐고.

저는 이제 누군가 나보다 앞서서 그 돌팔매를 대신 맞아주기를 기대하지 않겠습니다. 더 이상은 사과하지도 않겠습니다. 그저 내가 가장 앞장서서 기꺼이 돌팔매를 맞겠습니다. 나 역시 함께 그 돌을 맞아 마땅할 정도로 부끄럽게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싸움은 YTN의 미래 세대를 위한 싸움이라는 단단한 확신이 섰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처음 이 싸움을 시작했을 때, 저는 이 싸움이 노조의 싸움도 아닌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말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꼴 보기 싫은 낙하산 사장을 쫓아내고 편한 마음으로 쓰고 싶은 기사를 마음껏 쓰기 위해 싸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싸움이 금방 끝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고 내심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싸움은 300일 500일 1000일이 지나고 1200일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6년 차였던 저는 어느 새 10년차 기자가 됐습니다. 요즘은 나만의 싸움이 아니라 앞으로 20년 30년 뒤까지 자랑스러운 YTN의 전통을 이어갈 후배들을 위한 싸움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단 하루라도 기자답게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더 이상 비겁해지기 싫어서 싸웠다는 ‘저항의 역사’를 남겨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습니다.

앞으로도 분명히 지금의 정부처럼 포악한 권력 혹은 자본은 언제든지 등장할 수 있습니다. 또 혹시나 먼 훗날 저를 포함한 선배 기수들이 나이가 들어서 데스크가 되었을 때 지금 데스크들처럼 비판정신이 희미해지고 권력에 굴종하려 할 수도 있겠지요. 그때 저는 후배들이 저를 마음 놓고 비판하고 반기를 들고 저를 밀어내주기를 기대합니다. 그 언젠가를 위해서, 그럴 때는 반드시 싸워야 하고 싸워도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저는 지금 저항의 역사를, 승리한 투쟁의 전통을 남겨주고 싶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정말 아무 것도 두렵지가 않습니다. 내가 이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나를 누군가가 밟고 올라서서라도 공정한 YTN의 보도를, 권력이 넘볼 수 없는 YTN의 위상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행복하기까지 합니다. 3년, 길어야 6년짜리 샐러리맨 사장은 서슬 퍼런 위협과 징계를 악습처럼 반복하겠지만, YTN의 기자정신과 전통은 어떤 무기로도 짓밟을 수 없을 것임을 머지않아 알게 될 것입니다.

▲ 지난 2010년 10월 7일 오전 서울 태평로 YTN 본사 후문 앞에서 YTN 노조가 집회를 열고있다. 이날은 YTN 기자 6인이 해직된지 3년 되는 날이다. ⓒ언론노조

그리고 훗날 후배들은 이 싸움이 YTN의 정신과 전통을 단단하게 세우기 위한, 참으로 의미 있는 전투였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기자는 양심에 비추어 바른 기사를 쓸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역설적이게도 펜과 카메라를 내려놓아서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걸 그동안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적어도 맞거나 고문당하거나 생명을 잃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싸울 수 있지 않습니까? 이건 모두 앞서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남겨준 ‘저항의 역사’덕분입니다. 해직자들의 복직은 바로 그 저항의 역사가 결국은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 하나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그 역사를 방해하는 자는 결국 역사의 물결에 쓸려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 물결을 만드는 것은 바로 나, 그리고 우리입니다.

돌아온 선배들과 함께 정말 즐겁게 신명나게 미친 듯이 일하고 싶습니다. 내 머릿속의 검열은 지우개로 지워버리고 새로운 실험과 시도와 비판정신으로 무장한 보도를, 콘텐츠를 만들고 싶습니다. 내 가족이 자랑스러워하는, 국민에게 사랑받는 YTN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나 해직자들이 모두 돌아오지 않는다면 YTN의 옥새를 잠시 가져갔는지는 몰라도 영원히 YTN의 영혼은 얻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가 당신을 YTN사상 희대의 폭군으로 기록할 것입니다. 우리가 당신을 그렇게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후대에 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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