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초대석 주철환이 만난 사람 1- 김홍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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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초대석 주철환이 만난 사람 1- 김홍종
아직 많이 남은 ‘길 위의 날들’
  • 승인 1997.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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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프로듀서연합회보가 이번호부터 마련한 여의도 초대석은 pd가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pd들의 언어로 진솔하게 펼치는 장이다.mbc 주철환 pd가 kbs [ 신tv문학관] - ‘길위의 날들’로 국내·외 관련 상을 휩쓴 김홍종 pd를 시작으로 이 의미있는 만남을 주선하기로 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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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그가 내미는 한 장의 이력서에는 각종 수상경력이 빼곡이 들어차 있었다. 1975년 특집극 [ 어느 한국인] 으로 제3회 한국방송대상 국무총리상을 받은 것부터 시작하여 얼마전 단막극 [ 길 위의 날들] 로 이탈리아상 드라마부문 대상 수상에 이르기까지 프로듀서가 받을 수 있는 상이란 상은 거의 모두 휩쓴 이력이 그의 초라한(?) 첫인상과 사뭇 대조적이었다. 20세기 한국대중문화사를 정리하려는 자에게 그의 ‘방송계 역대 프로듀서 중 최다 최고 수상기록’(그의 이력서 맨 끝부분에 적혀 있다)은 분명 의미가 담긴 구절일 것이다.문화의 속성이 그러하듯 텔레비전 프로듀서가 드러내는 세계의 모습 또한 다기다양하다. 스물 여섯 해를 드라마 pd로 보낸 그와 불과 세 시간 남짓 마주앉은 후 ‘그는 어떤 사람이다’라고 규정하는 일은 우선 예의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다만 ‘문체 즉 스타일은 곧 그 사람이다’라는 명제가 문학을 넘어 영상매체인 tv에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룰이라면 그의 작품 스타일을 통해 어렴풋이 인간 김홍종을 짐작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contsmark3|- 지난번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 기사는 솔직함이 지나쳐 다소 가볍다는 느낌이 들던데요.- 책상에 앉아 나눈 대화가 아니었습니다. 술상에 앉아 ‘편하게’ 이야기했는데 마치 세상이 나를 너무 안 알아준다는 식으로 오해받게 써졌더군요. 기사가 나간 후 섭섭함을 전달했습니다.
|contsmark4|그의 출발점은 [ tv문학관] 이라는 이름이 시사하는 그대로 tv와 문학이 만나는 지점이었다. 아마도 그는 작가 혹은 예술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소수의 pd군에 속할 것이다. 물론 그의 돌출점은 예의 그 화려한 수상기록 연장선상에 있다. 대다수의 시청자들은 그가 만든 작품과의 조우보다는 신문의 수상소식을 통해 비로소 그를 인식했을 것이다. 문학작품이 상을 받으면 대체로 낙양의 지가를 올리는 반면 tv의 영상작품은 큰상을 받았다고 해서 가독률(시청률)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실제로 [ 길 위의 날들] 이 이탈리아상을 받은 후 앙코르 방송된 7월 6일 늦은 밤(정확히 12시 3분에 시작하여 새벽 1시 33분에 끝났다)의 시청률은 7.1퍼센트에 불과했다.(msk조사) 당시 신문의 방송면은 온통 [ 신데렐라] 로 도배되고 있었는데 그 열풍을 잠재우지는 못했지만 [ 길 위의 날들] 은 당당하게, 그러면서도 점잖게 통속의 세태를 비웃고 있었음에 분명했다.젊은 pd들은 두 가지 입신양명의 행태를 저울질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중성으로 승부할 것인가, 예술성으로 자리매김할 것인가. 상품을 만들 것인가, 작품집에 남길 것인가. 오락성인가, 완성도인가. 재미인가, 의미인가.프로듀서(생산자)는 숙명적으로 생산성을 고려해야 하는 직종이다. 공영방송사의 공훈연출가인 그에게 내려진 작위가 뜻밖에도 [ 신tv문학관] 의 폐쇄령 소문에 묻혀버린 현실이 안타까웠다. 16밀리 필름을 사용하여 찍은 [ 길 위의 날들] 에 2억의 제작비를 쏟아 부은(?) 결과였다.
|contsmark5|- 명성이란 어떤 것이라고 느끼십니까.- 경건하게 다가가면 자연스레 다가오는 것이지요.
|contsmark6|그는 ‘다가간다’는 동사를 자주 쓰는 편이다. 이를테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을 때 비로소 작품에 다가갈 수 있다”거나 “행복이란 다가가고자 하는 열망이다”라는 식의 표현을 주저함 없이 내뱉었다. 어눌할 줄 알았는데 잦은 인터뷰 경험 때문인지 탁 치면 툭 나오는 숙달됨이 배어 있었다.
|contsmark7|- [ 길 위의 날들] 의 착상 부근을 떠올려 주십시오.- [ 길 위의 날들] 은 이전의 [ 밤주막] (’92)과 [ 소년의 거리] (’93)에서 다루어보고자 했던 인간소외의 문제를 40대 장기수의 귀향으로 표현한 단막극입니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 때 사람들은 짧은 만남을 위해 긴 시간의 기다림을 참아내지 않습니까. 생각해 보면 점 하나에 불과한데도 그 점 하나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 방황하는 현대인의 고독을 드러내 보이고 싶었던 거죠.- 스스로는 그 방황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가늠하고 계십니까.- 작품은 방황 속에서 잉태되는 것이고 저는 해답을 찾기 위해 계속 터널 속을 헤매는 중입니다. 늦가을에 완성 예정인 [ 늙은 웨이터] 에서 다시 그 존재론적 쓸쓸함에 대해 천착해 볼 예정이구요.
|contsmark8|그는 1944년생이다. 창밖을 내다보며 안정감을 희구할 수도 있는 연조에 여전히 철학적이며, 사변적이며, 그러면서도 정력적인 창조욕구는 도대체 어디로부터 근거하는 것일까.
|contsmark9|- 가정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contsmark10|그에게 결혼은 불과 7년 전의 선택이었다. 스무해 전에 처음 만난 아내(박춘신)는 생일이 서로 같다는 인연에도 불구하고 13년간 그냥 ‘자꾸 우연히 만나게 되는’ 존재에 불과했다. 지금 그는 “아내 덕분에 작품이 윤기 있어졌다”라고 말하게끔 되었다. 두 아이(용우, 영세) 또한 “골방 스타일이었던 스스로를 재발견하게 만든” 귀한 존재들이라고 고백한다.
|contsmark11|- 샐러리맨 예술가로서의 대차대조표는 어떻습니까.- (웃음) 적자투성이죠.- 영화감독으로 독립할 의향은 없으십니까.- 준비가 안 된 상태입니다. 그 준비란 상업적으로 무장할 태세를 뜻합니다. 방송사의 pd란 월급쟁이면서 창조자 역할을 하는 경우인데요, 때로 기계적으로 일할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그래도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는 장르가 바로 [ 길 위의 날들] 과 같은 단막극이 아닌가 여겨져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contsmark12|근래 들어 그는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했다. 우황청심환을 먹고 치통약도 먹곤 하는데 가끔 ‘작업이 중요한 것인지 사는 게 중요한 것인지’ 갈등을 겪는 일도 있다고 피곤한 속내를 언뜻 내비친다. 그는 본방을 안 보고 재방 때 자신의 작품을 본다고 말했다. 두려움 때문이란다. [ 길 위의 날들] 의 경우 삼방 땐 다시 수정편집을 했단다. 그의 작가주의가 그의 치아를 아프게 한다는 동정심이 일었다.pd란 그것이 다양한 실험을 통한 성과라 할지라도 모름지기 일관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의 독자(시청자)들이 그의 세계관에 대해 혼란함을 겪지 않게 만드는 통일된 힘이 있어야 한다. 그와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초반에 품었던 의혹-이를테면 그가 애당초 상을 노리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아닐까 하는-은 실타래 풀리듯 스러졌다. 대신 그 자리에 ‘열정이 좌초한 후 기능인으로 변신한’ 가엾은 pd들의 뒷모습이 힘없이 나부끼고 있는 게 아닌가 얼핏 느껴졌다.그의 마지막 다짐은 소박함을 버리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닳아지고 싶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에게는 말을 시키기보다는 작품을 하도록 해야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걸어야 할 ‘길 위의 날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예감 때문이었다.|contsmar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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