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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사생활]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는다

‘안중근의사뼈대찾기사업회’ 안태근 EBS PD 방연주 기자l승인2012.03.12 10:5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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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안중근 전문가’로 알려진 안태근 EBS PD. 첫 대면한 안 PD는 먼저 기자에게 명함을 건넸다. 일반 명함과 달리 안 PD의 명함 뒷면에는 ‘안중근의사뼈대찾기사업회 안태근’이라는 글자가 또렷하게 박혀 있었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도곡동 EBS 내 외주제작부 사무실에서 안태근 EBS PD를 만나 안중근 의사에 대해 열정을 다하게 된 계기와 본격적으로 오는 4월부터 돌입하는 ‘안중근 유해 발굴 사업’에 대해 물었다.

안중근 의사와 안태근 PD. 이름만 들어도 얼추 인연을 짐작케 한다. “보통 제 이름을 처음 들은 분들은 안중근 의사 이름과 비슷하다면서 무슨 관계가 있냐고 자주 묻죠. 실은 할아버지께서 안 의사 고향 근처에 사셨고 안 의사를 존경하셨다고 들었어요. 안 의사 부친 함자 안태훈의 ‘태’자와 안중근 의사의 ‘근’자를 조합해 제 이름을 지으셨다고 합니다.”(웃음)

   
▲ 안태근 EBS PD ⓒPD저널

이처럼 안중근 의사와의 인연을 두고 “자신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고 답한 안 PD는 방송 PD로서는 이미 다큐멘터리 180여 편을 만들었을 정도로 베테랑이다. 서적 <나는 다큐멘터리 PD다>를 비롯해 안중근 의사 순국 80주기 <대한국인 안중근>(1990), 일제강점기 고향에서 내몰려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2004), 청년 안중근 의사의 애국심을 보다 쉽게 재조명한 어린이 모험극 <스파크-‘대 한국인 안중근’>(2009)등이 있다.

특히 안 PD는 재작년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기를 맞아 특집 다큐멘터리 <안중근 순국 백년-안 의사의 유해를 찾아라>(2010)를 연출했다. 2008년부터 3년 여간 안 의사의 행적과 안 의사의 묘소를 참배한 이들의 증언을 통해 안 의사 유해 매장 추정지를 찾아가 실마리를 확인하는 과정을 담았다.

안 PD가 안 의사에 대해 꼼꼼히 자료 조사하고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는 과정에서 우연찮게 국내 현존하는 오래된 필름을 입수하는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안 PD는 1920~30년대 한국과 중국에서 활동한 정기탁 영화감독이 안중근 의사의 민족혼을 담은 1928년 작품 <애국혼>의 스틸 컷과 한국인 감독이 연출한 극영화로는 현존 최고 필름인 <잘 있거라 상해>를 입수했을 때 뿌듯함을 느꼈다고 한다.

이 정도로 안 PD가 안중근 의사에 대해 열중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사실 일반인들에게 ‘안중근 의사’는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독립열사로, 문자 그대도 손가락을 자르며 독립의지를 다진 ‘단지동맹’으로 교과서를 통해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안 PD는 1910년 3월 26일 31세 뜨거운 삶을 마감한 안 의사가 죽기 직전 유해를 꼭 고국 땅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점에 주목해 “유해를 발굴하는 작업이 한국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로 여겼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안 PD는 방송 PD로서 안중근 의사를 재조명하는 것을 넘어서서 유해 발굴 작업에 직접 팔을 걷어 부쳤다. 안 PD는 지난 3월 12일 ‘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이하 ‘뼈대찾기사업회’)를 출범시키며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한 것이다. 안 PD는 “유해가 꼭 발견될 거라고 장담하긴 힘들다. 실은 국가 차원으로 발굴이 이뤄져야 하지만 거의 유명무실하다”며 “설사 발굴해서 아무것도 안 나와도 후손된 도리 아니겠느냐는 생각에 발 벗고 나섰다. 안 의사의 유해를 한국으로 모시는 게 작은 소망이다”라고 답했다.

   
▲ 안태근 PD가 안중근 의사 뼈대가 묻혀있을 거라는 추정 지역을 답사하고 있다.

이처럼 안 PD가 민간인 차원으로 20여 명의 전문가들을 직접 꾸려가며 뼈대찾기사업회를 꾸린 만큼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 쓸 일도 많았다. 안 PD는 국가보훈처에 안 의사 유해발굴에 대한 제안서를 수차례 올리는가 하면 성명서를 비롯해 작년 12월에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또 작년 9월부턴 안 PD가 직접 거리에 나서 안 의사 유해 발굴 사업과 관련한 전단지를 배포하고 거리모금을 시작했다.

“전단지를 10만장 정도 만들어서 관련단체를 비롯해 직접 사람들에게 나눠줬죠. 또 양재역을 기점으로 거리 모금도 시작했어요. 발굴비용이 만만치 않다보니 한 독지가로부터 도움 받는 게 손쉽겠지만 아무래도 일반인들로부터 한푼 두푼 모아서 하는 게 더욱 의미 있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혼자하면 부담이 컸을 텐데 주위사람들이 많이 도와줘서 고맙죠.”

그렇다고 해서 거리 모금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지하철역에서 만난 사람들은 “유해를 발굴하려는 지역에 정말 안 의사 유해가 있는 게 확실한 거냐”고 안 PD에게 물어 그 당위성을 30분간 붙잡고 설명하기도 했고, 한 어르신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을 PD인 당신이 왜 하려는 것이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당혹감을 감추기 힘들었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안 PD는 “아무래도 안 의사 유해에 대한 여러 가지 설들이 많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유해를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포기한 것 같다”며 “하지만 발굴해보지 않고선 모르는 일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어 안 PD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영하 10도로 기온이 훌쩍 떨어진 날이었지만 거리모금한 날 중에 가장 많은 하루 모금액 25만원이 모였다. 감동했다. 이러한 지지에 힘입어 잘 되리라 본다”라고 덧붙였다.

안 PD는 이러한 열정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던 밑바탕은 동료나 주위사람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안 PD는 이러한 도움과 함께 개인적으로는 “현장에서 나름대로 연구한 결과 (안 의사 유해 발굴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오랜 시간 고민해 유해 발굴 작업에 착수하기로 결정을 내린 일인 만큼 소신을 갖고 계속 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 PD는 오는 4월부터 본격적으로 안중근 의사의 유해 매장 추정지로 제기된 여순일러감옥지구박물관 부근 뒷산 묘역에 대한 발굴 작업에 들어간다. 이 과정은 다큐멘터리로 담아낼 예정이다. 역사 속에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안 의사. 독립 열사로서의 안 의사의 삶을 매듭짓기 위한 안 PD의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다. 안 PD가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았다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길 기대해본다.


방연주 기자  nalava@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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