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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장기화에 김재철 책임 추궁 ‘뒷전’…“이사 선임제도 개선 논의해야”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의 총파업이 45일을 넘겼지만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가 사실상 파업사태를 방관하고 있어 ‘방문진 개혁론’이 거세지고 있다. 뉴스파행과 드라마 결방, 보직자 줄사퇴, 박성호·이용마 기자 해고 등 매주 MBC에서 초유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방문진 이사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정치권의 입만 바라본다는 비판이다.

방문진은 1988년 MBC의 공적 책임을 실현하기 위해 방문진법에 근거해 탄생했다. 이사 9인(이사장 포함)은 3년간 임기를 통해 MBC의 공적 책임과 경영 등을 관리·감독하고 사장 임명은 물론 해임까지 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런데 최근 방문진 이사들의 행보를 보면 법에 보장된 권리마저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야당 추천 이사들은 MBC내에서 지난해 2011년 해외연수 예산 과다 지출 논란이 제기되자 MBC에 자료를 요청했지만 세 달째 받지 못하고 있으며 배임 논란이 불거진 사장 법인카드 사용내역도 요구했으나 13일 현재까지 받지 못했다.

또 김재철 사장은 파업이 시작된 지난 2월 “노조와의 충돌이 우려된다”며 두 번의 이사회를 모두 불출석하고 지난 7일 이사회에서야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사회 내에서 이를 질책하는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오히려 이사진은 파업 45일째인 14일에서야 임시이사회를 열고 파업사태를 공식 논의하는 모습을 보여 현 상황을 방관해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지난 7일 오후 김재철 MBC사장이 방문진 이사회 현안보고를 마치고 MBC노조 조합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MBC 본사로 향하고 있다. ⓒMBC노조
“불법파업은 엄정 대처해야 한다”는 여당 추천 이사들의 선언적 구호 앞에 수적 열세인 야당 추천 이사들은 무기력한 상황이다. 야당 이사들은 임시이사회에서 파업사태 해결을 위해 사장 해임안을 낼 예정이지만 통과여부는 불투명하다. 최창영 방문진 사무처장은 “여야 이사 모두 파업사태 해결이 급선무 과제”라고 말했지만 이사들 간의 온도차는 분명해 보인다.

 김 사장은 지난 7일 임원회의에서 △전 사원 프리랜서 고용 및 연봉제 도입 △예능·드라마 100% 외주제작 △MBC 공채 폐지·기자 계약직화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방문진 이사들은 이 같은 황당한 발언에도 코멘트 하나 하지 않고 있다. MBC노조관계자는 “김재우 방문진 이사장은 노조와의 면담을 계속 거부하며 스스로가 해야 할 역할을 포기했다”고도 비판했다.

이 같은 상황은 정부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가 방문진 이사들을 임명하는 현 제도의 한계 때문에 어느 정도 예견됐다. 방통위는 지난 2009년 이사 선임과정에서 여당성향 몫으로 6명, 야당성향 몫으로 3명을 배분했다. 이 때문에 방문진과 MBC가 정권의 ‘전리품’이란 지적이 반복되어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문진의 주류가 교체되고, 교체된 이사들이 정권의 입맛대로 MBC를 쥐락펴락하기 때문이다.

최근 김우룡 전 방문진 이사장의 폭로는 방문진의 명암을 그대로 보여줬다. 2010년 엄기영 사장을 내쫒고 김재철씨를 신임 사장으로 선임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김우룡 전 이사장은 지난 7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제대로 된 경영 능력과 리더십을 갖추지 못한 김 사장을 임명한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김우룡 전 이사장은 김 사장 선임과정에서 “임명권자(대통령)의 뜻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하며 “김재철 사장을 뽑은 책임의 절반은 나에게 있다”고 털어놨다. 이같은 발언은 자신들을 선임한 정치권의 뜻에 따라 거수기 노릇밖에 할 수 없는 방문진 이사진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 방문진 이사들은 지난해 8월 김 사장의 ‘사표 쇼’ 당시에도 구체적 추궁 없이 그를 재선임해야 했다.

이 때문에 현 파업사태와 별개로 방문진 선임구조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최승호 MBC PD(전 MBC노조위원장)는 최근 한 토론회에서 “방문진은 정파적인 사장 선임 제도의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며 “전면적 개혁을 통해 여든 야든 동의할 수 있는 수준의 선임제도를 마련해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논란이 되는 공영방송 사장의 편향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주장속에 정치권도 움직이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4·11총선 이후 정권에 예속된 사장 선임을 막고자 객관적·중립적 인사들로 구성된 ‘사장추천위원회’ 제도를 도입하고 방통위 주도의 공영방송 이사 선임 제도를 전면 개정할 것이라 예고했다. 남경필 새누리당 의원도 같은 맥락에서 ‘방송사 낙하산 사장 근절 법안’을 건의한 바 있다.

김경환 상지대 교수(언론광고학)는 “소수 이사진의 경우 한 두 명이 분위기를 잡기 때문에 이사진 인원을 늘려 다양한 입장이 반영되게 해야 하며 특별 다수제(3분의 2 또는 4분의 3 이상 찬성)를 도입해 김재철 사장처럼 상식에 벗어나는 인사를 검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방문진이 이번 파업을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방문진의 앞날도 결정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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