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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MBC·KBS·YTN 파업 뮤직비디오 ‘흰수염고래’ 촬영 현장

▲ 공정방송을 염원하는 뮤직비디오 제작 현장 ⓒ스티브

지난 13일 오후 1시경 서울 청담동의 한 녹음 스튜디오.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 둘 씩 스튜디오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날 녹음실의 주인공은 마이크와 카메라를 내리고 현재 파업 중인 KBS, MBC, YTN의 PD와 기자 그리고 아나운서들이었다. MBC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의 신정수 PD,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를 비롯해 문지애 MBC 아나운서, 박대기 KBS 기자, 최원정 KBS 아나운서, 이광용 KBS 아나운서, 엄경철 전 전국언론노조 KBS 새노조 위원장, 최영주 YTN 앵커 등…. 각 방송사를 대표할 만한 ‘간판급 스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일은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뉴스나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를 찾았던 아나운서, 사건·사고 현장을 누비며 방송 리포팅을 하던 기자, 그리고 카메라 뒤에서 프로그램을 진두지휘하던 PD들까지…. 이들의 손에는 큐시트와 대본 대신 악보가 들려있었다. MBC·KBS·YTN 방송 3사의 유례없는 공동 파업 소식과 희망의 메시지를 뮤직비디오로 대신하기 위해 기꺼이 녹음 스튜디오에 모인 것이다.

이날 이들에게 놓인 과제는 음악감독을 맡은 YB밴드 윤도현이 부 노래 ‘흰수염고래’를 솔로파트와 합창 파트를 나눠 부르는 것이다. 이들이 한 목소리로 한 노래를 부르는 만큼 ‘흰수염고래’의 의미 또한 특별하다. ‘흰수염고래’는 윤도현이 수염고래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만들게 된 곡으로 노랫말처럼 두려움 없이 서로 격려하며 살다보면 흰수염고래처럼 큰 존재가 될 수 있을거라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한다.

“우리도 언젠가 흰수염고래처럼 헤엄쳐 두려움 없이 이 넓은 세상 살아갈 수 있길” (‘흰수염고래’ 가사 중 일부)

노랫말 한 소절 한 소절은 현재 방송 3사의 방송인들이 처한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이들이 공정 방송을 외치며 연대파업을 나선 만큼 향후 희망적인 그 날이 올거라는 확신도 분명해 보였다.

녹음실은 상기된 분위기였다. 녹음을 앞두고 옹기종기 모여서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같이 현업에 있는 동료들인 데도 마치 연예인을 만난 것 마냥 서로 ‘인증샷’을 찍기도 했다. 이들은 연신 파업투쟁 현장의 목소리를 트위터를 통해 살펴보곤 했지만 직접 ‘뮤직비디오 제작’에 출연하는 색다른 시도를 앞둬서인지 약간은 들뜬 표정이었다.

오후 1시 25분. 한 스태프의 2시부터 녹음을 시작한다는 알림과 함께 이들은 삼삼오오 무리지어 노래 ‘흰수염고래’ 가사가 적힌 종이를 한 손에 쥐고 노래를 맞춰봤다. 최원정·이광용·김승휘 KBS 아나운서는 서로 박자를 맞춰가며 한 소절씩 부르며 연습에 열중했다.

이들은 본격적인 녹음에 앞서 ‘흰수염고래’의 전곡을 들으며 멜로디와 솔로 파트를 점검했다. 특히 고음이 많은 파트를 두고 “김태호 PD께서 맡으시고요”라는 지시가 떨어지자 녹음현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또 기자가 박대기 KBS 기자에게 참여하게 된 소감을 묻자 약간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현재 성대결절이지만 그래도 열심히 불러보겠다. 앞으로 산적해 있는 부분들이 잘 해결되길 바란다”며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 문지애 MBC 아나운서(좌)와 최원정 KBS 아나운서(우)가 나서 노래를 부르는 뮤직비디오 장면을 촬영하고 있다.(사진 위) ⓒ스티브

오후 2시부터 여성 파트에 대한 첫 녹음이 진행됐다. 기자·아나운서·PD로 구성된 10명과 비교적 고음 부분을 쉽게 소화할 수 있는 방송사 대표 남성 보컬들도 차출돼 박자를 맞췄다. 마이크 앞에서 쭈뼛거리는 모습을 보이자 가수 윤도현은 “편안하게 부르되 고음은 마음껏 세게 부르면 된다”며 독려했다. 그래서인지 여성 파트 녹음은 원활하게 진행됐다. 작업은 각 파트마다 녹음 한 두 번으로 ‘OK사인’이 떨어졌고 30여 분만에 끝마칠 수 있었다.

다음 녹음은 남성 파트. 녹음에 앞서 가수 윤도현은 “‘흰수염고래’가 생각보다 키가 높아서 한 옥타브를 낮춰서 부르셔도 된다”라고 조언하자 신정수 MBC PD는 “그러면 너무 노래의 맛이 없지 않을까”라는 농을 건네 웃음을 유발했다. 이들은 원곡 키 그대로 맞춰 우렁찬 목소리로 첫 녹음에 임했지만 고음과 저음 뒤섞여 서로 웃음을 참지 못하고 녹음이 중단되기도 했다.

유독 남성 파트의 녹음은 시행착오가 많았다. 이들은 다소 의욕이 앞선 나머지 실제 박자보다 노래의 템포가 빨라지기 일쑤였다. 윤도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확실히 앞 조(여성파트)가 잘하신 것 같은데요”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어 윤도현은 “잘하셨지만 충분히 쉬면서 노래하면 편하게 부르면 된다”며 용기를 북돋았다. 남성 파트는 약 40여 분간 저음 파트와 고음 파트로 나눠 따로 녹음이 진행됐고 결과적으론 풍성한 목소리가 담긴 노래로 재탄생될 수 있었다.

▲ 김태호 MBC PD와 박대기 KBS 기자가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다.(사진 위) 신정수 MBC PD(우)도 열창하며 뮤직비디오 촬영에 임하고 있다. (사진 아래) ⓒ스티브

이번 콘서트 프로그램을 기획한 탁현민 교수는 “당사자들인 MBC·KBS·YTN의 노조원들이 각자 목소리로 하나의 노래를 부른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또 이번 뮤직비디오 제작을 맡아 분주하게 현장을 오가던 민일홍 KBS PD는 “연대 파업인 상황에서 이렇게 한 자리에서 함께 할 수 있어 매우 의미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녹음 현장에서 줄곧 밝은 표정으로 임한 문지애 MBC 아나운서도 뮤직비디오 제작과 관련해 섭외를 받았을 때도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문 아나운서는 “MBC·KBS·YTN은 시청자 여러분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만큼 방송인으로서 얼굴을 드러내고 할 수 있는 역할으르 다해야 한다고 여겼다. 시청자들에게 MBC를 돌려드리기 위해 나선만큼 잘 봐주시고 동참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최원정 KBS 아나운서도 “이렇게 무언가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쁘다”며 “이번 총파업 투쟁은 이미 승리한 싸움”이라고 말했다.

노래 ‘흰수염고래’의 어려움을 이겨낸다는 가사처럼 방송인들은 현재 자신들이 맞닥뜨린 상황을 이겨내고 있으며 이젠 공정 방송의 실현이 바로 눈 앞에 와있음을 몸소 느끼는 듯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녹음 스튜디오 안 노래의 울림은 더욱 커져갔다. 이들 모두가 현장으로 돌아가 PD로서 ‘큐 사인’을 날리는 그 날, 기자로서 공정보도 리포팅을 하는 그 날, 아나운서로서 시청자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때에 전해주는 그 날이 머지 않아 보인다.

이번에 제작된 뮤직비디오는 오는 16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여의도 공원 문화의 마당에서 펼쳐지는 ‘방송 낙하산 동반 퇴임 축하쇼’ 자리에서 공개된다. 이 자리에는 현재 파업에 돌입하거나 파업을 선언한 MBC·KBS·YTN·부산일보·국민일보·연합뉴스 등 전국언론노조 조합원들을 비롯해 방송인 김제동, ‘나는 꼼수다’ 출연진, 가수 이승환, 이은미, 이적, YB밴드, 드렁큰타이거, DJ.DOC 등의 화려한 축하무대가 꾸며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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