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따져보기] 우리 모두 같이 웃을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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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인기리에 방영중인 KBS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 ‘감수성’에는 내시가 한 명 등장한다. 이 내시 캐릭터를 이용한 웃음 코드는 ‘남성성 상실’(거세)에서 나온다. 남성성이 상실된 내시는 ‘여성’으로 대접받고 남성에게 성적지향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러한 웃음코드는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거세되었다고 해서 이성애자 남성의 성적지향이 갑자기 바뀌는 것은 아니다. ‘남성성 상실=여성=남성을 좋아할 것’이라는 공식은 이성애주의의 틀 안에서 형성된 왜곡된 관념이다.

▲ KBS 2TV <개그콘서트>의 코너 '감수성' ⓒKBS

코미디 프로그램은 여성이나 사회적소수자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참 불편할 때가 많다. 못생기거나 뚱뚱한 여성에 대한 비하, 그리고 최근 들어 동성애와 성정체성에 대한 조롱도 단골소재가 되고 있다. 흔히 코미디에 딴죽 걸면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덤빈다’고 말 꺼낸 사람을 민망하게 만든다. 다들 웃는데 심각하게 분석하고 따지고 드는 것은 ‘오버’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혹자는 가학과 조롱은 코미디의 속성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 경제, 사회 모든 영역이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데 코미디만 성역이 되어야할 이유는 없다. 또한 정치적 올바름과 표현의 자유가 대립되는 개념은 아니다. 페미니스트에게도 표현의 자유는 굉장히 중요한 정치적 의제이다.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표현의 자유 쟁취는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것과 관련된다.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 대해 시청거부와 방송금지 운동까지 벌어졌던 소동을 보라.

나는 이런 식의 웃음주기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것보다, 상상력이 부족하고 진부하다는 데 점수를 더 깎고 싶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통념과 조롱에 기댄 안일함 때문이다. 약자를 조롱해서 웃음을 유발하는 것은 쉽다. 사회가 이미 그들을 ‘웃음거리’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약자를 조롱하거나 편견을 재생산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많은 사람을 웃길 수 있다. 지금은 끝난 코너인 <개그콘서트>의 ‘패션 넘버5’도 패션업계에 대한 조롱을 기반으로 하지만 불편하지 않다. 풍자이기 때문이다. 같은 조롱이지만 내용과 효과는 완전히 다르다.

하나는 약자에 대한 차별에 편승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권위에 대한 공격이다. 같은 프로그램의 ‘네가지’ 코너는 편견에 직설로 대응하는, 그야말로 웃자고 하는 말들에 죽자고 덤비는 풍자 코미디다. 개인적으로는 여성개그맨 버전의 ‘네가지’를 보고 싶은 소망도 있다.

예술이 가장 생명력이 있을 때는 창의적 상상력으로 기존의 것들을 섞거나 비틀어서 새로운 것을 보여줄 때이다. 풍자가 매력적인 것은 현재의 왜곡된 모습을 꿰뚫어 인간 사회가 더 나은 단계로 한걸음 올라서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코미디가 풍자일 필요는 없다. 재치와 익살로 빚은 유희야말로 코미디가 주는 가장 순수한 즐거움이기도 하다. 그 즐거운 유희에 모두가 즐겁게 동참하고 싶은 것, 너무 억지스런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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