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행의 편지] 노태우만도 못한 정권
상태바
[이근행의 편지] 노태우만도 못한 정권
  • 이근행 전 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
  • 승인 2012.03.21 14: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근행 전 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
국무총리실 민간인사찰 의혹이 불거지자 증거물 폐기 과정에서 청와대로부터 현금을 받았다고 폭로한 정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뉴스타파>의 이근행 전 MBC PD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스타파 화면 캡쳐

줄줄이 사탕처럼 마구 터져 나옵니다.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가 ‘민간인 불법사찰 및 은폐’의 몸통이라는 사실이, 결국 내부자의 폭로로 그 추악한 실상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권부(權府)의 범죄집단으로부터 충분히 ‘보호받지 못했거나’ 혹은 ‘보상받지 못했던’ 내부자의 연쇄폭로는, 가공(架空)의 영화를 능가하는 최고의 ‘부당거래’입니다.

그러나 청와대는 지금 입 다물고, 시쳇말로 ‘생까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이제 ‘선출된 권력’이라는 이유로 결코 양해되거나 용서될 수 없는 중대 범죄집단으로 전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고책임자인 이명박 대통령은 이 사안에 대해 상응하는 정치적 책임을 지기는커녕 예나 지금이나 뻔뻔스런 버티기로 일관합니다.

 ‘사찰’이라는 말을 들으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윤석양 이병 양심선언 사건’을 기억할 겁니다. 국군보안사령부가 정치인, 종교인, 사회운동가, 학생 등을 광범위하게 사찰하고 관리했던 사실을 고발했던 사건입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때는 1980년 신군부의 핵심이었던 노태우 씨가 대통령이었던 시기입니다. 1987년이라는 민주화의 시기를 거쳤지만, 신군부세력이 대선에 승리함으로써 여전히 군사주의와 권위주의가 청산되지 않았던 때입니다. 

▲ 국무총리실 민간인사찰 의혹이 불거지자 증거물 폐기 과정에서 청와대로부터 현금을 받았다고 폭로한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뉴스타파>의 이근행 전 MBC PD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스타파 화면 캡쳐

 

노태우 정권이 이 문제를 어찌 처리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찾아보았습니다. 윤 이병이 양심선언을 한 날이 1990년 10월 4일. 이튿날 10월 5일 국방부 사찰 사실 시인. 사건 발생 나흘 뒤인 10월 8일 국방장관 이상훈과 보안사령관 조남풍 전격 경질. 이후 후임 이종구 국방장관은 국회에서 ‘민간인 사찰은 불법’임을 인정하면서, 민간인사찰의 본거지 서빙고 분실의 폐쇄, 하급부대 보안반 철수, 지방보안파견대 폐지 등을 천명했습니다. 이듬 해 1991년 1월 1일 국군보안사는 국군기무사로 개편되었습니다. 빠른 속도입니다. 거듭 확인하고 싶은 사실은 이게 사실상 군사정권이나 다름없는 노태우 정권하에서 진행되었던 사건처리과정이라는 겁니다. 

노태우 정권의 사건처리를 칭찬할 뜻이 있어서는 아닙니다. 확인되는 바와 같이, 이명박 정권의 민간인불법사찰 및 은폐에 대한 정치적 태도는 신군부 노태우 정권만도 못합니다. 지금까지 청와대는 앞으로는 변명과 모르쇠 그리고 꼬리 자르기로 시종일관했고, 뒤로는 음흉한 은폐공작을 진행해 왔습니다.

사건의 은폐과정은 참 가관입니다. 청와대가 ‘대포폰’을 쓰며 자료 폐기를 지휘하고, 수 천 만원의 현금을 건네며 입 막음을 시도합니다. 무마금의 출처로는 국세청까지 등장했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검찰과 사건처리를 조율했을 것이라는 혐의는 사건발생 이후 검찰의 의도적인 축소수사로 인해 거의 사실로 인식됩니다.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불법사찰의 실무부서였던 공직윤리지원관실 관련책임자들에게 위로금을 건네기까지 합니다. 이 정권의 범죄는 정말, 말 그대로 총체적이고 끝이 없습니다.

사정이 이 정도일진데 어찌 대통령이랍시고 자리에 앉아서 국정을 이야기하고, 국방을 이야기하고, 외교를 이야기 하고, 국가의 미래를 국민에게 훈계하듯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뻔뻔스런 일입니다. 아무리 선출된 권력이라 해도 무한권력일 수 없습니다.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나야 합니다. 대통령도 범죄자일 수 있고, 처벌 받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응당 처벌하는 것이야 말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기도 합니다. 좌든 우든, 진보든 보수든,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모든 권력은 주권자인 국민위에 있을 수 없습니다. ‘청산 없이 역사가 바로 설 수 없다’는 뼈저린 되뇌임을 우리는 너무 오래 해왔습니다. 그 청산의 출발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4월 11일은 선거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