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우리는 언제까지 참기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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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친한 선배가 운영하는 프로덕션에 들렀다. 선배는 작년 이맘 때 개업(?)을 했는데 1년이 다 되도록 레귤러 프로그램이 하나도 없어서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어 했다. 매일 기획안을 쓰고 열심히 뛰어다녔는데도 프리랜서 PD때보다 수입이 훨씬 적었다.

그러던 선배가 올 초부턴가 종편채널의 레귤러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됐다. 선배는 기뻐하면서 ‘이제야 일이 풀리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면서 원활한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PD들도 더 뽑고 회사 경리까지 두면서 전에 있던 사무실보다 조금 더 넓은 곳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났을까? 종편채널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종편채널이 독립프로덕션에게 사전 예고도 없이 일방적으로 프로그램을 없애고 있다는 등 대부분이 종편채널 횡포에 독립프로덕션들이 큰 피해를 보게 됐다는 얘기였다.

더군다나 종편채널과 제대로 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독립프로덕션이 많아 피해를 보고도 항의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는 곳이 많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계약서를 작성하고 종편채널이 잘못한 것이 분명하다 하더라도 나중이 두려워 종편채널의 부당함에 대응하려는 독립프로덕션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선배도 예외는 아니었다. 해외 소식을 전하는 프로그램으로, 6개월 계약을 하고 몇 주는 정말 활기차게 해외 촬영도 나가고 제작이 착착 진행됐다. 그런데 갑자기 종편채널 A사 측에서 프로그램 제작을 중단하라는 통보를 해왔다. 선배는 그 때 이미 해외에 나가 있었고 일부 PD는 이미 다음 편 촬영까지 마친 상태였다.

제작 중단 이유는 너무 어이없고 단순했다. 본부장이 바뀌었는데, 그 본부장이 새로 프로그램을 재정비하면서 선배가 제작 중이던 프로그램 제작을 잠시 보류시킨 거라고 했다. 계약서의 내용은 완전히 무시한 일방적인 횡포였다. 선배는 4500만원에 가까운 손해를 봤다. 그 돈이면 프로덕션이 망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선배의 프로덕션은 다시 휘청거렸다.

나는 선배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분통이 터지고 기가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직접 당한 선배의 심정은 오죽할까? 그러나 선배는 울분을 꾹꾹 눌러버렸다. 계약서도 있으니 법적으로 항의하고 싶은데 이 좁은 방송 바닥에서 좋지 않게 찍히면 다음 프로그램도 하지 못할까봐 참는다고 했다. 지금은 참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3월 16일), 선배와 난 독립PD들과 함께 한국독립PD협회 깃발을 들고 방송3사의 여의도 파업콘서트 현장을 찾았다.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이 방송 판이 하루 빨리 제 모습을 찾길 간절히 바라며 모두 힘내라고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 김승희 독립PD

 

쏟아지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두가 하나 되어 방송사 낙하산 사장 공동 퇴임과 공정언론 회복을 위해 한 목소리를 외치는 모습을 보며 한 편으로는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날 무대에 선 가수 이은미는 말했다. “힘 있는 자들이 약자를 너무 쉽게 괴롭히는 시대가 돼버렸다. 그보다 더 나쁜 건 침묵하는 언론이었다. 이제 서로의 힘을 믿고 이 현실을 바꿔야한다.” 나는, 우리는 언제까지 참기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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