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대 확산된 ‘막장 심의’ 풍자 영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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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프로그램에 등장한 ‘방송심의’

“우리 건달들도 방송 심의만 지키면 방송 할 수 있어.”(KBS <개그콘서트 ‘방송과의 전쟁’>), “대놓고 간접광고 하는 겁니까. 영심위에서 티 안나는 속옷 간접광고를 보여주겠습니다.”(SBS <개그투나잇 ‘영상물심사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의 ‘막장 심의’가 개그프로그램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이전에도 방송 심의의 문제는 ‘양념’으로 예능프로그램의 재미를 더했다. MBC <무한도전>은 여러차례 방송 제재를 받은 뒤 박명수의 발길질에는 정지화면과 ‘품위유지’란 자막을 넣고, “그러면 양복입고 어디에 가야 한다”라는 멘트를 통해 방심위의 제재결정에 응수했다.

하지만 SBS ‘영상물심사위원회’에 이어 대표 개그프로그램인 KBS <개그콘서트>에서 ‘방송과의 전쟁’이 신설된 것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 KBS <개그콘서트> ‘방송과의 전쟁’ⓒKBS
지상파 개그프로그램에서 비슷한 시기에 방송심의 문제를 정면으로 들고 나온 것은 처음이다. 더군다나 웃음을 끌어내기 쉬운 소재도 아니다. ‘방송과의 전쟁’코너에서 조직원으로 출연하는 개그우먼 김혜선 씨는 “작가들도 심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는 게 처음이라서 반신반의했고, 관객과 시청자가 이해하기 쉽게 단순화하는 게 어려웠다”며 “첫방송에서 의외로 반응이 좋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안철호 <개그투나잇> PD도 “매주 심의의 틀 안에서 소재를 찾는 일이 쉽지 않다”며 “조금만 잘못 다루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지 불분명해지고 본질이 희석된다”라고 어려움을 말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두 코너는 ‘심의 문제’라는 중심축을 놓고 다양한 웃음 포인트를 넣는 방식을 차용하고 있다. 2회 방송까지 나간 ‘방송과의 전쟁’은 방송사를 차지하기 위한 양조직간의 ‘전쟁’이 핵심 줄거리다. 이 코너는 ‘가재는 종편’이라는 유행어를 통해 종합편성채널 특혜에 대한 풍자를 과감히 시도하고, 또 방송사 연쇄파업 등 민감한 방송가 현안을 소재로 삼았다. 여기에 직접 광고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자체 제작한 모자이크 판은 심의를 상징한다. ‘발연기가 방송불가 수준이야’ 등의 대사는 납득할 수 없는 방송 심의를 꼬집는다.

봄 개편을 앞두고 휴지기에 들어간 ‘영상물심사위원회’는 심의의 문제를 세태 비판으로 연결하는 방식이 코너의 콘셉트다.

이런 소재의 한계를 딛고 심의 문제가 코너의 소재로 등장하기까지는 방심위의 활약이 컸다는 분석이다. 방심위가 ‘선정성’, ‘저속한 표현’ 등의 이유를 들어 프로그램에 무분별한 제재를 가하고 웹툰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까지 심의 대상을 확대하면서 시청자와 누리꾼의 불만이 커졌다. 이제 정치와 시사영역처럼 과도한 심의규제가 풍자의 대상에 들어왔다는 의미다. 지난달 31일 ‘방송과의 전쟁’코너가 결방되자 SNS 상에서 ‘외압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 것도 이런 여론을 반영한 것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미 3~4년전부터 방송심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대중적인 공감대가 형성이 됐다”며 “<무한도전>의 폭력성 심의와 아이돌의 의상과 춤에 대한 수위까지 거론되면서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는 소비층 내에서는 문제의식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 SBS <개그투나잇> ‘영상물심사위원회’ⓒSBS
두 코너는 심의를 받는 대상에서 심의 문제를 지적하는 주체로 역할이 바뀌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이 때문에 제작진의 ‘사심’이 일면 반영됐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안철호 PD는 “일단 개그맨들이 심의와 관련한 아이템을 가지고 오면 솔깃해진다”며 말했다.

KBS <개그스타2> 등을 집필한 최대웅 작가는 “무분별한 ‘외계어’ 사용 등 엄격하게 규제할 부분도 있다”고 전제한 뒤 “제작하는 입장에서 심의의 문제를 코미디라는 형식을 통해 대중들에게 쉽게 알리는 측면도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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