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에 ‘라디오학개론’ 봄바람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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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에 ‘라디오학개론’ 봄바람 분다
[현장] MBC 라디오 PD들이 들려주는 방송·파업 이야기
  • 정철운 기자
  • 승인 2012.05.11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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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서울여대 잔디밭에서 MBC 라디오PD들의 <라디오학개론>에 참가한 학생들과 라디오PD들이 둘러앉아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PD저널
전여민 PD(왼쪽)와 주혜승 서울여대 학생(오른쪽)의 모습. ⓒPD저널
이민선 PD의 '라디오학개론' 강연 모습. 이날 개론 수업은 실내 강연보다 '뒤풀이'가 우선이었다. ⓒPD저널
“딱 그 때(1994년) ‘기억의 습작’이 나왔어. 김동률도 건축학과고 <건축학개론> 감독도 건축학과인거 알지? 그 땐 하드 1GB(기가바이트)면 평생 못 쓸것 같았는데….” (손한서 PD)

지난 9일 푸른 초 여름날 서울 화랑로 서울여대 제1과학관 앞 잔디밭. 1990년대 대학을 다닌 ‘건축학개론 세대’인 MBC 라디오PD들이 20여 명의 대학생과 돗자리를 깔고 둘러앉았다. 이들은 ‘라디오학개론’ 일일수업으로 만났다. 파업 100일을 넘긴 라디오 PD 12명이 대학생들에게 파업 이유를 알리고 라디오PD의 매력도 함께 전하자며 의기투합한 게 시작이었다. 5월 첫째 주부터 시작한 개론수업(을 빙자한 미팅)은 이미 경희대와 카이스트에서도 화기애애하게 이뤄졌다.

이날의 ‘라디오학개론’은 시사교양프로그램처럼 강렬하지도, 예능프로그램처럼 웃기지도, 드라마처럼 극적이지도 않았지만 라디오 특유의 감성과 재치가 녹아있었다. 대학생들이 “방송은 PD의 손끝에서 시작하고 손끝에서 끝난다!”고 외치면 “그건 우리도 처음 듣는데…”라는 답이 흘러나오는 식이었다.

MBC, 레이디 가가 콘서트 중계 꿈도 못꾼다

▲ 지난 9일 서울여대 잔디밭에서 MBC 라디오PD들의 <라디오학개론>에 참가한 학생들과 라디오PD들이 둘러앉아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PD저널

잔디밭 한 쪽에선 “책을 많이 읽어 문화 콘텐츠를 흡수하라”며 제법 진지한 설교가 오고 갔고, 그 옆에선 “MBC는 ‘머털도사’나 ‘나홀로 집에’ 같다. 아직도 레이디 가가 콘서트 실황중계는 꿈도 못 꾸고 하춘화 디너쇼나 한다”는 푸념도 나왔다. 일터를 떠나있는 이들이었지만, 여전히 머릿속은 MBC와 라디오뿐이었다. 또 다른 곳에선 신성훈PD가 “우린 수다를 멈추면 안 돼. 놀다보면 개편 방향이 나오거든. 이게 브레인스토밍의 힘이야”라며 껄껄댔다.

<이동진의 꿈꾸는 다락방>을 연출하는 이창호 PD는 “세상 모든 것에는 구멍이 있고, 우리는 구멍을 메우는 삶을 산다”고 말한 뒤 “MBC에는 ‘김재철’이란 큰 구멍이 있다. 여러분이 도와주시면 메울 수 있다”고 응원을 부탁했다. 손한서PD는 대학선배의 ‘아우라’로 “우린 다 구멍투성이야. 그러니까 구멍투성이인 사람들의 권위에 눌리면 안되”라며 ‘구멍철학’을 설파했다.  

<이상은의 골든디스크>를 연출하는 이민선 PD는 지난해 경력 PD로 입사할 수 있었던 자기소개서 포트폴리오를 ‘독점공개’하며 언론사 입사 노하우를 알려줬다. 그녀는 “라디오 PD는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모든 면에서 세심한 감성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절대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외로운 길을 간다”고 했다. 더불어 “부장에게 잔소리도 많이 듣지만, 땡 퇴근이 가능해요”라며 학생들에게 라디오 PD의 하루 일과를 신나게 풀어놨다. 그 누구보다 라디오 PD라는 직업을 사랑하는 것 같은 이 PD가 100일째 파업 중이란 사실이 퍼뜩 떠올랐다.  

신성훈 PD는 대학생들에게 “어제(8일)가 파업 100일이라 100배를 했다”며 “우리가 왜 파업 하는지 여러분이 공감해준다면 빨리 회사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MBC파업에 대한 학생들의 1차 관심은 <무한도전> 방송여부였다. “언제 방영돼요?” 학생들이 물었다. “파업 끝나면….” PD들이 답했다. 옆에 있던 손한서 PD가 끼어들었다. “재철 아저씨한테 편지 하나 써줘. 빨리 나가시라고.”(웃음)

노동문제 꺼리는 간부 지시에 파업 할 수 있는 곳, MBC   

▲ 이민선 PD의 '라디오학개론' 강연 모습. 이날 개론 수업은 실내 강연보다 '뒤풀이'가 우선이었다. ⓒPD저널

손한서 PD는 지난해 <손에 잡히는 경제, 홍기빈입니다> 연출자였다. 그는 유성기업의 파업사태와 주야 2교대의 문제점 등을 다뤘다가 연출을 못하는 부서로 쫓겨난 경험이 있다. 손 PD는 말했다. “라디오본부장이 (나를) 불러서 노동문제는 다루지 말라고 하더라. 경제프로그램에서 노동문제를 다루지 말라니….” 대학생들은 이 이야기에 다들 의아해했다. 손 PD는 “내 사례는 탄압의 일부분이고, 많은 PD들이 이런 강압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다 같이 파업을 하러 나갈 수 있다는 게, MBC의 진짜 힘”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모임은 여름 모기와 함께 4시간 넘게 이어졌다. 언론인을 꿈꾸는 후배들은 선배들의 모습이 반갑고, 뿌듯했다. 행사에 참여한 주혜승(서울여대 문헌정보학과 2학년)씨는 “PD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은데 직접 현장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밝힌 뒤 “이분들이 빨리 현장으로 돌아가 좋은 방송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김재철 사장님이 물러나셔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라디오학개론’은 페이스북이나 손한서 PD의 트위터를 통해 단체로 신청 가능하다. 순수한 1990년대의 열정으로 돌아가 공정방송을 외치는 라디오 PD들은 조만간 중앙대(16일)와 숙명여대(18일), 인하대(25일)와 세종대(30일)를 찾을 예정이다. ‘라디오학개론’은 파업이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 전여민 PD(왼쪽)와 주혜승 서울여대 학생(오른쪽)의 모습. ⓒPD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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