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MBC 파업이 100일을 넘었다. 몇 명 이탈자가 생겼다. 내 눈엔 차라리 자연스럽다. 그 긴 시간, 약해지기는커녕 더 뜨거워지는 경이로운 파업의 풍경 속에서, 그 정도의 풍파도 없다면 왠지 너무 인간미가 없지 않은가.
그래도, 복귀 이유는 궁금하다. 신의 계시를 내세운 경우야 신학 연구의 대상일 터이니 논외로 하더라도, 최근 인터넷을 지배한 배현진 아나운서의 말은 찬찬히 살펴보고 싶다. 복도에서 만나면 늘 눈웃음과 함께 고개를 꾸벅하던 모습이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기도 하거니와, 그녀가 발표한 복귀의 이유는 그래도 ‘속세’의 말이기 때문이다.

전체 글의 내용은 ‘오늘 처음으로 주체적 선택을 했다. 이제는 일방적으로 노조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것이다. 난해한 건 두 번째 문장이다. “진실과 사실 사이의 촘촘한 경계를 오가며 무척이나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사실’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이다. ‘진실’은 ‘거짓이 없는 사실’이다. 사실과 진실, 그게 그거다. 굳이 구별하자면, 진실은 거짓 없는 진짜 사실이라는 걸 거듭 강조하는 말이라고나 할까.

이효성 교수의 책 ‘통하니까 사람이다’에는 “객관적 현실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감각과 인식과 이해력의 한계, 편견, 가치관, 이해관계 등에 의해 좌우되는 주관적인 입장에서 그 현실을 보게 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하나의 진실은 없고  여러 개의 다른 버전의 진실이 있을 뿐”이라고 쓰여 있다. 결론적으로 사실은 객관적 현실이고, 진실은 주관적 입장에서 해석한 객관적 현실의 버전, ‘진실은 저마다의 가슴 속에 있다’고 할 때의 그것이다.

배현진 아나운서가 말하는 사실과 진실은 무엇일까. 사실 = 김재철 사장 아래서 언론 자유와 공정 방송은 불가능하며, 또 법적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으니 퇴진하라고 요구하면서, 노조가 100일 넘게 파업을 계속하고 있는 객관적 현실. 진실 = 그 현실을 그녀가 주관적 입장에서 바라본 것.
이제, 그녀의 두 번째 문장을 풀이해보자. “진실과 사실 사이의” → “나의 주관적 입장에서 바라본 현실과 객관적 현실 사이의”. “촘촘한 경계를 오가며 무척이나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 “느슨하지 않은(확실히 구분되는) 경계를 넘나드느라 무척 괴로웠다.”

처음부터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분명히 다른 둘 사이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해야 하는 그 인지 부조화의 괴로움, 얼마나 컸을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여하튼 그녀의 복귀는 처음부터 시간문제였을 뿐, 무슨 새로운 깨달음으로 진실이 바뀐 때문이 아니었다.

그런데, 안타깝다. “그 친구들의 성향과 행태는 아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놀랍지 않다는 것을 이제야 밝힌다”는 선배 아나운서의 코멘트야 배신한 후배에 대한 분풀이라고 되받아 칠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유일하게 따르겠다는 시청자들조차도 그녀의 복귀를 냉소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으니 말이다.   

▲ 송일준 MBC PD
뉴스에서 그녀를 볼 때마다 아내는 말했다. “저 아가씬 어쩜 저렇게 예쁘고 똑 부러져. 뉘 집 딸내미인지 부럽다.” 그런데, 은행 빚을 얻어야 하는 처지에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는 동료 선후배들을 뒤로 하고 그녀가 다시 화면에 나오는 걸 보게 되면, 아내는 뭐라고 할까. 혹시라도 “역시 미모와 지혜는 함께 하기 힘들다는 옛말, 그른 게 아니네”라고 말한다면, 나는 이렇게 응수할 참이다. “무슨 소리, MBC에 재색을 겸비한 인재들이 얼마나 많은데.”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