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우리가 파업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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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우리가 파업하는 이유
  • PD저널
  • 승인 2012.05.16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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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끝난 KBS <드라마스페셜> ‘국회의원 정치성 실종사건’편의 한 장면. 대통령이 된 주인공이 “방송 3사의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다”며 방송사 파업 문제를 국무회의 안건으로 내세우고, 극중 방통위원장에게 “그러다 훅 가는 수가 있어요. 그거 빨리 해결해야 합니다”라고 파업 사태 해결을 촉구한다. 보는 내내 즐거웠던 한 편의 통쾌한 풍자극이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우리의 현실엔 끝이 없다. MBC 파업은 100일을 훌쩍 넘겼고, KBS 파업도 70일을 넘겼지만 해결의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와는 180도 다른 우리의 현실. 각 방송사의 사장들과 방송통신위원회, 그리고 새누리당까지 방송사 파업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당사자들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고 방송사 파업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 역시 그다지 뜨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디 그 뿐인가. 상황은 방송사 파업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다. 많은 이들을 분노케 했던 통합진보당의 이른바 ‘당권파’들이 보여준 모습은 진보세력에 대한 실망과 도덕적 비난을 살만 했다.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정 경선 파문은 각종 정치사회적 이슈와 논란거리의 블랙홀이 되고 있고 방송사 파업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파업 중인 방송사 내부에서도 파업 이탈자가 생기면서 뒤숭숭하다. 지난 주말 MBC에서는 일부 아나운서들이 복귀했고, KBS <1박 2일>은 6주 만에 방송됐다. 시청자들은 다시 시작한 <1박 2일>을 보고 즐거워했겠지만 KBS가 여전히 파업하고 있다는 사실은 잠시나마 잊었을 것이며, 그걸 바라보는 동료 언론인들의 마음 또한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파업이 유례없이 장기화되는 지금 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파업 대신 방송을 선택했을 것이고 그것은 말 그대로 개인의 ‘선택’이다.

그러나 우리는 파업을 접을 수 없다. 대한민국의 오늘은 어떠한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현 정권 실세들이 뇌물 혐의로 구속돼 있는 나라.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병했는데도 수입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정부의 '광우병 현지조사단'은 현지 농장조차 방문하지 못했지만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발표하는 나라. 저축은행 은행장이 예금주 돈 100억원을 가지고 밀항을 시도하는 나라. 그리고 어떤 방송에서도 이런 문제의 본질을 이야기하지 않는 나라. 

언론인들이 파업하고 있는 이유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분명하고 변하지 않았다. MBC <PD수첩>에서 위의 사건들을 제대로 보도하기 위해서, KBS에서 더 이상 ‘관제쇼’를 보지 않기 위해서, 시청자들이 원하는 뉴스를 모든 방송사에서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서다. 파업 100일을 넘겼지만 우리가 또다시 힘을 모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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