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대구 고등 법원에서는 문화재 은닉 및 훼손혐의로 1심에서 10년형을 선고받은 배모씨의 공판이 열렸다.
재판 중 주심판사가 배모씨에게 물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어디에 있는지, 피고는 압니까?” 배씨는 짧게 대답했다. “예”. 그렇다. 배씨가 은닉한 문화재는 국보 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된 훈민정음 해례본의 또 다른 판본이었다.
2008년 상주에서 잠시 등장했다가 사라진 훈민정음 해례 상주본. 지금 당장 경매시장에 나온다면 300억을 호가할 것이며, 그 상징적 가치는 1조원에 달한다는 이 엄청난 문화재의 행방을 오직 배씨만이 알고 있는 것이다. 1983년 공직생활을 시작한 이래 문화재 전문 도굴꾼과 싸우며 우리 문화재 2만여점을 되찾은 베테랑 중 베테랑인 강반장은 지난 4년간 사라진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아다녔다.
“꼭 찾아야 합니다. 제 소원입니다.”올해 나이 예순 둘. 그는 정년을 한 달 남짓 남기고 있었다.
배씨가 해례본을 은닉한 이유는 소유권 분쟁 때문이었다. 같은 지역에서 골동품점을 운영하는 조 모씨가 원래 해례본은 본인의 것이며, 배씨가 그것을 훔쳐갔다고 주장한 것. 민사재판에서 조 씨가 원 주인임이 밝혀졌지만, 그것을 돌려줘야하는 배씨는 해례본의 행방에 대해서 끝까지 함구했다.
세 차례에 걸친 검찰의 압수수색에서도 해례본을 찾지 못했다. 문화재 훼손 혐의로 10년이라는 중형을 받았지만 배씨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데 해례본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이 또 나타났다. 조계종에서 안동에 있는 광흥사라는 절이 해례본의 원래 주인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 게다가 도굴꾼계의 1인자인 서 모씨가 자신이 광흥사에서 해례본을 훔쳐 조 씨에게 팔았다고 주장하고 나서기까지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