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개론 세대’ 문화로 진화하다
상태바
‘건축학개론 세대’ 문화로 진화하다
  • 방연주 기자
  • 승인 2012.05.29 22: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2년 만에 안방극장에 돌아온 SBS <신사의 품격>의 배우 장동건과 토크쇼 <GO 쇼>의 진행자 배우 고현정 ⓒSBS
영화 <건축학 개론>

도화선은 영화 <건축학 개론>이었다. 개봉한 지 50일 여일 만에 누적 관객 수 400만 명을 돌파했다. 국내 멜로 영화의 신기록이다. 영화 흥행의 파장은 컸다. 1990년대의 감성과 문화를 섬세하게 담아내 3040세대의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평가와 함께 ‘건축학개론 세대’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그야말로 ‘90년대 재발견’이다. 당시 경제성장의 열매와 대중문화의 전성기를 누리며 자유분방함으로 상징돼온 ‘X세대’가 현재 문화의 주요 소비계층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방송가에서도 ‘90년대’는 흥행 키워드가 됐다. 1990년대 주름 잡았던 스타들이 방송가로 속속 복귀하는가 하면 당시 대중문화를 향유한 X세대를 위한 기획들을 선보이고 있다.

■ 대중문화의 변곡점 ‘X세대’= 최근까지만 해도 대중문화계는 ‘올드팬’의 감성을 일깨웠다. 정통 라이브 선두주자인 조영남·송창식·김세환 등이 토크쇼에 출연하면서 ‘세시봉’ 열풍을 일으켰다. 영화계에선 <써니>가 흥행했다. X세대 이전 세대를 다뤄 통기타, 장발, 청바지로 상징되는 1970~80년대 복고 열풍을 재점화시킨 것이다. MBC <빛과 그림자>와 KBS <사랑비>에서도 그 흐름을 찾아볼 수 있다.

▲ 영화 <건축학 개론>

이 가운데 영화 <건축학 개론>의 흥행은 또 다른 ‘신호탄’이다. 본격적으로 1990년대 문화적 향수에 대한 반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건축학 개론 세대’의 전신은 ‘X세대’이다. 삐삐, CD플레이어, 오렌지족으로 상징되는 ‘X세대’는 1970년대에 태어나 1990년대 대중문화의 전성기 아래 청춘을 보낸 3040세대를 일컫는다. 이들이 기성세대 대열로 진입하면서 그들의 추억은 회고의 대상이 됐다. 또 X세대는 경제력을 갖춘 대중문화의 생산과 소비의 주축이 됐다.

이처럼 ‘X세대’가 대중문화 소비층으로 급부상하면서 ‘세대 마케팅’의 타깃이 되고 있다. <건축학 개론>을 비롯해 공효진·하정우 주연의 30대 연애를 그린 영화 <러브픽션>도 170만 명을 모으며 잔잔한 인기몰이를 했다. 최광희 영화평론가(@cinemAgora)는 트위터를 통해 “최근 한국 로맨틱코미디에서 20대는 정체가 모호하고 변덕스러운 세대가 돼버린 대신 새로운 타깃으로서 결혼을 미루는 30대가 로맨스의 주역으로 떠올랐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올해 대중음악계에선 이례적으로 가수 ‘버스커버스커’ 열풍이 불었다. 지난 3월 정규 앨범이 발매되자마자 주요 음원사이트에서 1위를 휩쓸며 기염을 토했다. 타이틀곡 ‘벚꽃엔딩’은 후크송에서 벗어나 쉬운 가사와 리듬은 아날로그적 감성이 깔린 3040세대까지 아울렀다. 한 음원 사이트에선 전람회, 토이, 패닉 등 1990년대 감성 음반 기획전을 내놓았다.

출판계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듯 발 빠르게 3040대를 타깃으로 한 자기계발서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 <40대, 다시 한 번 공부에 미쳐라>, <마흔 이후 나의 가치를 발견하다> 등 40대를 대상으로 한 책만 이미 10여종을 넘어섰다.

■ ‘X세대’의 브라운관 복귀= 방송계에서도 X세대의 물결을 포착할 수 있다. 1990년대 당시 X세대의 선두주자였던 배우와 가수들이 방송계로 복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손지창과 투톱으로 나서 농구 붐을 일으킨 <마지막 승부>(1994)의 장동건은 12년 만에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으로 브라운관에 컴백했다. <종합병원>(1994)의 신은경은 SBS <그래도 당신>에서 ‘줌마렐라’로 돌아왔다. 당시 신은경은 기존 여성의 이미지를 탈피해 자유분방하고 중성적 매력을 내뿜어 ‘X세대 아이콘’으로 급부상했다. 또 MBC <아이두 아이두>(30일 첫방송)에서 배우 김선아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골드미스 구두 디자이너로 분한다.

▲ 12년 만에 안방극장에 돌아온 SBS <신사의 품격>의 배우 장동건과 토크쇼 의 진행자 배우 고현정 ⓒSBS

 

이외에도 ‘귀가시계’로 불릴 정도로 최고시청률 64.5%를 돌파했던 <모래시계>(1995)의 히로인 고현정은 SBS <GO쇼>의 진행자로 나서 예능인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으며 데뷔곡 ‘날 떠나지마’(1994)로 주목받는 신예로 떠올랐던 가수 박진영은 어느덧 18년차 가수로 자리매김해 신곡 ‘너뿐이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1990년대 당시 X세대의 견인차 역할을 한 장본인들이기에 현재 동세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방송가에선 X세대의 눈길을 끌만한 기획들도 선보이고 있다.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청춘나이트 1, 2를 선보였다. 국내 대중음악계의 정점을 찍었다고 평가되는 1990년대 ‘추억 돋는 가수’ 솔리드, 박미경, 양파, 소찬휘 등 대거 출연해 당시 명곡들을 재조명했다. 이밖에 MBC <나는 가수다>, KBS 2TV <불후의 명곡>, SBS <K-POP 스타>, Mnet <슈퍼스타 K> 등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1990년대 명곡 기획을 선보였다.

차우진 대중문화평론가는 “1990년대 당시 10~20대였던 이들이 3040세대가 됐다. 방송가에서도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PD들도 그 또래가 됐다”며 “어느 세대건 자신이 겪은 시대가 가장 좋은 법이다. 그러한 면에서 당시 문화를 즐겼던 사람들이 1990년대를 기억하고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드는 건 자연스러운 추세”라고 말했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는 “1990년대 대중문화의 소비가 급격하게 팽창하긴 했지만 1970~80년대처럼 뚜렷한 특징은 없는 시기이다. 1990년대 중후반에는 영화나 음악의 퀄리티나 방향성이 지금과 유사한 측면이 많아 (방송가에서는) 1990년대의 키워드를 어떻게 뽑아내느냐에 따라 X세대의 잠재적인 문화에 대한 소비가 더욱 퍼질 수 있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