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빨갱이’ 등 ‘색깔론’으로 진보당 사태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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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봉 “조·중·동, 자극적 단어로 진보에 흠집…대선 노림수”

비례대표 부정경선 논란에서 출발한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이 진보진영 전체에 ‘색깔론’ 제기함으로써 공론장을 왜곡시키고 대선 국면 속 진보진영에 타격을 입히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15일 오후 한국언론정보학회와 저널리즘학연구소 공동 주최로 서울 정동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디지털 민주주의 시대의 마녀사냥: 정치언론과 공론장의 왜곡’ 토론회에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선거 논란이 시작된 지난 4월 1일부터 지난 5월 23일 사이 조선·중앙·동아일보와 한겨레·경향·오마이뉴스의 보도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기간에 6개 언론사 중 통합진보당 사태를 가장 많이 보도한 곳은 <조선일보>로 무려 169건에 달했다. <중앙일보>는 90건, <동아일보>는 91건이었다. 진보 성향 언론으로 분류되는 <한겨레>의 관련 보도는 105건이었으며, <경향신문>과 <오마이뉴스>는 각각 115건, 72건이었다.

▲ 한국언론정보학회와 저널리즘학연구소 공동 주최로 15일 서울 정동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디지털 민주주의 시대의 마녀 사냥: 정치언론과 공론장의 왜곡’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PD저널
‘빨갱이’ ‘테러범’ 등 자극적 단어로 진보진영 ‘흠집’

최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조선일보>가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도하며 가장 많이 사용한 키워드는 ‘주체사상(주사파)’으로 무려 41회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력(전쟁터)’(39회), ‘진흙탕’(26회), ‘테러(범죄)’(9회), ‘빨갱이’(8회), ‘개판(엉망진창)’(3회), ‘종북’(1회), ‘도둑놈’(1회) 등의 키워드도 등장했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도 통합진보당 사태를 ‘북한’과 엮는 ‘주체사상’(동아 43회·중앙 12회), ‘종북’(동아 42회·중앙 20회) 등의 키워드를 사용해 관련 보도를 이어갔다. 반면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주체사상’ 등 북한 관련 키워드를 일절 사용하지 않았으며, <오마이뉴스>도 ‘주체사상’ 4회, ‘종북’ 4회 등 이념적인 키워드의 사용을 자제했다.

최 교수는 “<조선일보> 등은 정치적으로 아주 민감한 문제 중 하나인 북한 관련 키워드를 자주 사용함으로써 통합진보당과 진보세력의 사상과 정체성을 문제 삼았다”며 “특히 <조선일보>의 경우 ‘종북’ 등의 단어보다 자극적인 ‘빨갱이’, ‘테러’, ‘전쟁터’ 등 자극적인 단어의 사용을 통해 통합진보당을 폭력집단으로 낙인찍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기사 프레임을 ‘계파갈등’ ‘부정선거’ ‘도덕성’ ‘정파주의’ ‘종북좌파’ ‘진보분열’ ‘지지율 추락’ ‘선거조작’ ‘당권/비당권파 갈등’ 등 9개로 나눠 살폈는데, <조선일보> 보도에선 ‘부정선거’(102회), ‘당권/비당권파 갈등’(47회), ‘부정선거’(102회) 등의 프레임 사용이 58%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조선일보>는 ‘부정선거’ 프레임을 통해 통합진보당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트리고, ‘당권/비당권파 갈등’ 프레임을 통해 개혁진보세력을 분열시켜 통합진보당이 ‘고립-분열-자멸’하도록 부추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계파 갈등’ 프레임을 통해 모든 정당에 존재하고 있는 계파 갈등을 통합진보당의 경우에는 ‘색깔론’으로 연결시켜 정체성에 흠집을 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최 교수는 “결국 <조선일보>의 프레임은 통합진보당의 부정선거 사태를 이용해 통합진보당과 진보진영 전체에 색깔론을 제기함으로써 통합진보당이 진보진영으로부터 고립되고, 진보진영을 분열시켜 (진보진영이) 대선 정국에서 타격을 입도록 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지적했다.

보수신문·여권 사상검증 몰이, 되레 자충수 가능성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은 “신문이라면 어떤 사안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 비판해야 하는데 (논리 등) 그런 부분이 약하니 <조선일보> 등은 감정적 표현으로 프레임을 만들고자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간 ‘대통령을 만드는 신문’이라는 이상한 명성을 누려왔던 <조선일보> 등이 이렇게 무리한 얘기를 만드는 것은 진보의 약화, 그리고 갈등의 조장을 통해 (연말) 대선의 주체로 나서기 위함인 듯하다”고 지적했다.

또 “<조선일보> 등은 종합편성채널 등 이번 정권에서 받은 특혜가 많다. 정권이 바뀌면 없어질 종편채널도 많은 상황이다. 그렇다보니 보수 정권의 미래와 자사의 이익을 동일시하며 언론으로서의 정도를 포기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꼬집었다.

김 소장은 그러나 보수 성향 언론들의 이 같은 사상검증몰이, 즉 매카시즘 광풍이 오히려 그들의 위기의식을 방증하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80년대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빨갱이 사냥’이 가장 심했던 때는 85년이었다. 이때 정권과 보수언론은 ‘용공’이란 단어를 넘어 ‘친공’이란 단어까지 사용했다. 하지만 기억하다시피 86년, 87년 우리 국민들은 변화에 대한 큰 요구를 보였다. 결국 (이런 위기감 때문에) <조선일보> 등에서 더욱 ‘종북’, ‘빨갱이’ 몰이에 나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류정민 <미디어오늘> 기자도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 보수언론과 여권이 매카시즘으로 반응하고 있는 데 대해 “집권전략으로 단기적으로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중장기적으론 자충수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류 기자는 지난 8일 <한국일보>가 실시한 창간특집 여론조사에서 주요 대선 주자 중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가장 보수적인 인물로 뽑힌 것을 언급하며 “대선을 준비하는 박 전 위원장 입장에선 매우 심각한 결과다. 중도와 2040 젊은 층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면 대선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건 상식이다. 그래서인지 지난 13일 <한겨레> 1면 기사를 보면 새누리당은 더 이상 종북 논란을 확대시키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고 지적했다.

류 기자는 통합진보당 사태를 ‘종북’ 프레임으로 몰고 가는 언론의 행태에 대해서도 “정치적 목적을 위해 누군가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하고 한국 사회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독버섯으로 작용할 지 생각해봐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언론은 이런 매카시즘 광풍의 전달자가 돼 유신시대로 되돌리는 데 역할을 했다. 이런 행위가 훗날 역사에서 어떻게 기록될지 생각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도하는 진보 성향 언론에 대해서도 “<한겨레> 등의 언론이 (상대적으로) 균형감을 지킨 부분이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하지만 초기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도하면서 그간 문제를 보인 당권파를 이번 기회에 전면에서 후퇴시키도록 하기 위해 조금 세게 액션(보도)을 했던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중심 논의에서) 상대적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 ‘애국가 논쟁’ 등까지 이슈화한 측면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계기로 보수 언론이 짜놓은 프레임에 다소 휘둘린 게 아닐지 스스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류 기자는 덧붙였다.

한편 이기형 경희대 교수(언론정보학)는 “보수언론의 일련의 보도로 한국 사회 전체의 공론장이 훼손되면서, 긴급하게 논의해야 할 민생 과제나 현안들은 무시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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