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다시 쓴 최장기 파업, 2막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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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MBC 170일 파업의 의미와 과제

MBC노조 조합원들에게 170일 파업투쟁의 원동력은 김재철 사장이었다. 그러나 김재철 사장은 끝내 물러나지 않았다. 노조 집행부와 조합원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업무복귀를 결정했다. 김재철 사장을 ‘제대로’ 몰아내기 위한 전략 변화다. 170일간의 투쟁과정과 결과를 놓고 아쉬운 지적도 있다. MBC 역사상 최장기 파업으로 기록될 이번 파업의 성과와 과제를 짚어봤다.

▲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본사 D스튜디오에서 열린 ‘MBC 정상화를 위한 복귀투쟁 선포식’에서 최고참 안성일씨와 막내 기수인 김소영 씨가 업무복귀를 알리는 대국민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 MBC파업이 남긴 교훈 = 우선 방송사 파업은 노사문제를 넘어선 민주주의의 문제라는 점이 다시금 확인됐다. 김승수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는 “방송사 파업은 국민의 알권리와 여가생활에 직접적인 장애로 이어지는 중대한 사회적 사건”이라고 지적한 뒤 “여당이나 청와대가 방송사 파업을 일반 제조업의 노사문제처럼 보고 방관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시각인지 이번 파업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공영방송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도 마련됐다. 당장 김재철 사장 퇴진에는 실패했지만 MBC노조가 퇴진 이상의 것을 얻었다고 자평하는 이유다. 노조는 17일 대국민선언문에서 “170일 간의 파업으로 향후 어떤 정권이 들어서건 MBC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란 사실을 만천하에 알렸다”고 강조했다.

정영하 MBC노조위원장은 “조합원들이 다시 현장에 돌아간다면 파업하며 느꼈던 공정보도에 대한 열망이 드러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는 “파업으로 인한 물리적 성과에는 아쉬움이 있지만 저널리즘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한 싸움이 170일간 지속되며 시민들에게 진정성을 보여준 점에서는 정서적 성과가 있다”고 평했다.

▲ MBC노조 조합원들이 파업송 ‘MBC프리덤’을 부르며 율동을 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 MBC 파업이 남긴 아쉬움 = 우선 노조가 사장 퇴진문제 해결을 놓고 정치권에 의존한 결과로 귀결된 것은 여전한 한계점으로 지적됐다. 전규찬 언론연대 대표는 “보수 야당(민주당)을 움직여 사태를 해결하려는 식의 발상은 후진 패러다임”이라며 “제도 정치를 움직이는 것은 직접민주주의를 담보할 수 없어 충분치 않은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도 “정치세력의 도움(합의문)에 의해 업무복귀를 하는 것은 여전히 방송이 정치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모습을 보여줘 아쉽다”고 밝혔다.

김승수 교수는 “4·11 총선 같은 중요한 시기에 노조가 파업을 풀고 프로그램을 제작해 유권자에게 필요한 보도를 했다면 정치지형에 기대지 않고도 문제 해결이 가능했을 것”이라 내다봤다. 언론계에선 MBC노조가 파업 기간 중 시민사회와의 전략적 연대가 부족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MBC노조가 김재철 사장 해임을 위해 택했던 전술이 ‘비리사장 퇴출’ 프레임에 갇혀 ‘공정방송 회복’이라는 애초의 목적이 희석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노조는 법인카드 사용내역과 무용가 J씨에 대한 각종 특혜를 폭로하며 김 사장의 배임죄를 주장했다. 이와 관련 파업에 참여한 MBC의 전직 간부는 “김재철 개인비리에 집중한 나머지 공정보도 이슈를 잃어버린 점이 아쉬웠다. 뒤늦게라도 국민 서명전에 돌입해 다행이었다”고 밝혔다.

▲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본사 D스튜디오에서 열린 ‘MBC 정상화를 위한 복귀투쟁 선포식’ⓒ전국언론노조
■ 험난한 길 예상되는 공정방송투쟁 = 김재철 사장이 새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진에 의해 해임될 것이라곤 하지만 이는 노조의 바람으로만 끝날 수도 있다. 더욱이 8월에 새 사장이 선임돼도 또 다른 ‘낙하산 사장’이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때문에 노조는 업무복귀 이후에도 파업 때와 같은 단결을 유지해야한다. 그러나 ‘문제적’ 경영진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당장 100여명에 달하는 시용직원과도 마주쳐야 하는 조합원들에겐 쉽지 않은 투쟁이 예상된다. 이를 두고 최진봉 교수는 “밖에서 싸워온 강도 이상으로 편파왜곡방송에 대한 현장 투쟁이 계속되지 않는다면 지난 170일이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MBC노조는 방문진에 대한 비판 수위도 높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170일 장기파업이라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정치권력으로부터 근원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 단발적인 ‘사장 반대’ 프레임으론 공정방송을 이루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정영하 위원장은 17일 기자간담회에서 “새 방문진 이사가 현 방문진 이사처럼 버티기 국면을 보인다면 다시 파업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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